뛰면서 '전기'를 만든다… 바닥 밟는 힘으로

압력을 전기로 바꾸는 '압전 소자'… / 선문대, 기존 기술보다 '100배 효율' 이뤄내
英·네덜란드 나이트클럽… 춤추는 압력 이용해 '조명'

걸으면서 휴대폰 충전에 車엔진 장착 등 활용 가능해

 

트럭이 달리면서 도로를 누르는 힘이나 사람이 춤추면서 바닥을 밟는 힘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까. 최근 이처럼 일상에서 버려진 에너지를 모아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하는 '에너지 추수(energy harvesting)'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국내 연구진이 에너지 추수 기술의 핵심인 압전(壓電) 소자의 효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걷는 힘으로 휴대폰을 충전하고, 자동차의 진동을 전기로 바꾸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압력을 전기로 바꾼다

압전 소자는 압력을 받으면 전기를 생산하는 물질이다. 가장 대표적인 압전 소자 물질은 PZT. 구성 요소인 납(Pb), 지르코늄(Zr), 티타늄(Ti)의 첫 글자를 모아 이름을 붙였다. PZT가 압력을 받으면 내부의 분자들이 +전기와 -전기로 나뉘어 분리된다. 전기를 띤 분자들 사이로 전자가 움직이면서 전기가 만들어진다.

선문대 재료공학부 이호용 교수팀은 PZT의 극성을 띤 분자들을 특정 위치에 가지런히 모아 놓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기존 압전소자보다 100배나 전기 생산성이 좋은 압전소자를 개발했다.

PZT의 효율은 압력 때문에 전기 극성을 띤 PZT 분자들을 얼마나 한 곳으로 잘 모으느냐에 달렸다. 예컨대 +전기를 띤 분자들은 시계의 3시 자리에, -전기를 띤 분자들은 시계의 9시 자리에 몰려 있어야 전기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 그렇지 않고 +전기를 띤 분자들이 시계의 1시부터 5시 자리에 골고루 분포되고 -전기를 띤 분자들이 시계의 7시부터 11시 자리에 분포된다면 PZT의 전기 세기가 약해진다.

이 교수팀의 비결은 불순물을 첨가하는 도핑(doping)에 있다. 연구진은 란탄이란 물질을 PZT에 첨가하면 납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으면서 PZT 분자에 불균형 상태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상태에서 압력이 가해지면 전기를 띤 분자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비율이 높아져 전기 생산 효율이 좋아진다. 이 교수팀은 지난 8월 중국 시안에서 열린 '국제 강유전체 응용 학회(IMF-ISAF)'에서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압전 소자는 휴대용 발전기

압전 소자는 다양한 곳에서 버려지는 에너지를 전기로 바꿀 수 있다. 네덜란드 '클럽와트', 영국의 '수리야' 나이트클럽의 바닥에는 압전 소자가 설치돼 있다. 사람들이 춤을 추며 바닥을 누르면 압력을 전기로 바꿔 조명에 쓰고 있다.

교각에 압전 소자를 설치하면 자동차가 노면에 전달하는 압력을 전기로 전환해 조명이나 교각의 부식을 감시하는 센서에 무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특히 센서의 전력원으로 태양전지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비가 오거나 야간에는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압전 소자의 활용 가치가 더 높다.

압전 소자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휴대용 발전기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행군하는 군인의 전투화에 압전 소자를 설치하면 부산물로 전기를 얻을 수 있다. 군인이 외부와 통화하기 위해 별도의 무거운 배터리를 지닐 필요가 없어진다. 휴대폰에 압전 소자가 들어가면 배터리가 방전됐을 때 전기를 바로 생산할 수 있다. 압전 소자에 추를 달아 휴대폰에 집어넣으면 휴대폰을 흔들 때마다 추가 압전 소자에 충격을 줘 전기를 얻을 수 있다.

압전 소자의 남은 과제는 내구성의 향상이다. 최근 압전 소자를 자동차의 엔진에 장착해 엔진의 엄청난 진동을 전기로 바꾸는 연구가 활발하다. 상용화를 위해선 엔진의 진동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압전 소자의 내구성을 높여야 한다. 미국의 MIT, 버지니아 공대를 비롯한 많은 연구진이 압전 소자의 내구성 향상에 매달리고 있다.

이호용 교수는 "압전 소자가 자동차 엔진에 장착되려면 현재보다 내구성이 수 십배는 향상돼야 한다"며 "전기를 생산하는 동시에 압전 소자가 엔진의 진동과 소음을 잘 흡수하는 데에도 각국의 연구진들이 연구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2009.10.29 조호진기자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