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좋은사회를 그리며.

대한민국 남자의 두 부류(군대 다녀온 vs 안 다녀온)

흔적. 2010. 12. 3. 12:38

군대란...다시 생각난다. 그 유쾌한(?) 경험을.

12월 한달을 매일 빠따(곡갱이 자루로 엉덩이)맞던 기억(맞은 2주후 부턴 안맞으면 더욱 불안하고...)

1월1일 빵빠레(새벽에 팬티바람으로 연병장 집합, "눈밖에 수류탄!"하면 눈속으로 들어가는..)

관물(부대장비)이 없어져 대표로 훔치던 사건, 훔치다 들켜 멱살잡고 흔들었던  일들..(지금도 재밌다)

중대 체육대회 축구, 씨름선수로 하던 일...교육시절 배구선수로 나가 준우승하던 일...ㅋㅋ

그리고 고참되어서는 내 선에서 악습을 끊을려고 했던 좋은 기억들...

삶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동기와 후임..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아파했던...전우애.

어쩌면 국가보다 국민보다 전우애때문에 용감해지고 싸우는것 같다. 단결심, 책임감같은...

아! 이래서 군대를 가는가보다...고참되니 느꼈다. 쫄병땐 싫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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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참 한심한......

대한민국 면제공화국(병력,사기,폭력,뇌물,,), 그 면제자를 뽑은 우매한 국민들..

군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장군들, 국방이 무엇인지 정치인들. 말로만 국민을 외치는 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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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한나라.jpg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연평도를 방문했을 때, 폭격을 맞은 현장을 찾아 보온병을 들고 포탄 껍데기라고 말한 것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병역 미필의 안상수 대표는 그렇다쳐도 육군 중장(별셋)출신인 황진하 의원까지 어림짐작으로 76미리와 122미리 방사포 껍데기라고 한 것입니다. 폭격 맞은 현장에서 비슷한 물체를 보고 헷갈리면 뭐 그럴수 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 대한 비웃음은 단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것만이 아닙니다.

 

이에 앞서, 지난 23일 북한의 연평도 폭격이 있던 당시 대통령이 "확전 안되게"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후에 말을 바꾼것 까지도 크게 문제가 되어, 말했니 안했니라고 확인 논란이 벌어졌고, 다음날 해병대 출신의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은 "개자식들"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맹렬히 비난했고, 결국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수석까지 목이 날아갑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지면서 국민들의 냉소가 이어지는 걸까요?

 

거슬러 보니 가수 유승준이 생각납니다. 월드스타 비가 나오기 전까지 국내 최고의 댄스 가수는 유승준이었습니다. 근육질에 잘생기고 노래와 춤까지 잘추는데다, 평소 겸손하기 까지한 이 친구는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 관리하던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 했던 약속을 뒤집고 미국 시민권을 택하며 군대를 가지 않은 것에 대해 대한민국 예비역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급기야 입국금지라는 사태까지 이어졌고, "유승준이 아니라 그는 스티브유"라고 까지 말하는 국민들의 분노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건국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과 안 다녀온 사람으로.(여기서 말하는 군대는 현역, 장교는 물론 방위, 공익, 특례요원 포함입니다. 물론 가려 했으나 진실로 피치못한 조건 때문에 못간 사람도 안 다녀온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남자 대학생은 현역(미필)과 예비역(군필)으로 나뉩니다. 남자 스무살, 영장이 나온 그 나이란 고교를 졸업후 바로 사회에 진출했으면 막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한참때이며 바로 진학을 했다면 대학 2학년의 시기입니다. 성인으로 인정받아 이제 막 인생이 뭔가를, 사랑이 뭔지를,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공부가 본격적으로 재미있을 시기에 이 땅의 남자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시기는 인생에 있어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최고의 시기입니다. 그리고 2년. 제가 육군으로 입대한 1988년도엔 2년 6개월이었습니다.(공군은 3년)   

 

저는 군생활을 통해 자살과 구타, 빵빠레, 얼차례 (기합),모욕과 성희롱 등을 경험했습니다. 빵빠레란 자다가 갑자기 내무반장이나 야간장교가 집합을 걸어 내무반 전체가 팬티 바람으로 연병장 돌기나 구타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훈련소 때엔 아픈 몸을 이끌고 10킬로 구보를 하다 3백미터를 남겨놓고 기절을 해서 죽을뻔 한적이 있고, 자대에선 재래식 옥외 화장실에 똥을 푸다가 똥물이 얼굴과 군복에 튀어 고참(선임병)과 함께 어이가 없어 걸레로 얼굴을 닦으며 실컷 웃은 추억도 있습니다.

 

이등병 시절엔 고참들의 연애 편지와 추억록을 도맡아 숙제처럼 했고, 매일 동기 한명, 쫄병들이 실수를 할때마다 식당 뒤나 보일러실에 집합을 당해 군화발로 배를 차여서 고생한 적이 많았습니다. 밥먹고 돌아오는 길에 발이 안맞는다고 연병장 선착순을 하다가 다 토한 적도 여러번이었고, 신고식을 한다고 간 첫날 새벽까지 얼차례를 받으면서 '사람이 이러다 죽는구나'라고 뼈저리게 느낀 적도 있습니다. 

 

1989 봄 ts훈련.jpg

1989년 3월/ 오른쪽 두번째 조인원 일병 

 

소대장 야상을 대신 다리다가 태워먹어서 혼난적도 있고, 벙커에서 잡지를 보다가 걸려서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을 돌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필 다음날 눈이 많이 왔는데 제가 하루종일 돌았던 발자국은 트랙처럼 남았고, 밥먹으러 식당을 가던 동기가 "힘내"라고 한마디 해주는 덕에 그날 하루 편히 잤던 기억도 있습니다. 

 

큰 고생없이 자란 제가 세상에 모든 불합리, 인생에 쓴 맛, 어이없음 이런 것들을 처음 느끼게 해준 곳이 바로 군대였습니다.  

 

하지만 군생활이 힘든 것은 그런 황당함이 아니라 세상과의 단절에 따른 지루함과 그리움 때문입니다. 얼마나 지겨우면 군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간다" 이었겠습니까? 세상과 단절된 그곳은 그리운 가족과 친구, 애인을 두고 온 이팔 청춘들에겐 정말 답답함 그 자체입니다. 

 

8월에 입대한 저는 첫 추석을 훈련소에서 맞았습니다. 늘 그래왔듯, 아무 이유없이 밤에 집합을 당한 우리 중대원 전원은 팬티 차림에 원산폭격(머리를 땅에 박는 얼차례)으로 노래를 부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날 보름달을 보며 보고싶은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삼키느라 '어버이 은혜'를 끝까지 부른 사람을 거의 없었습니다. 이등병도 아닌 훈련병이 감히 어떻게 제대의 날짜를 셌겠습니까? 그렇게 다시는 못볼것 같은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며 어찌할수 없는 세상과의 단절을 매일밤 목구멍으로 삼켜야 했던 젊은이들이 바로 군대를 갔던 사람들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최근 연평도 폭격이후 정치권에 던지는 국민들의 조소에는 바로 병역 미필자들에 대한 조소가 깔려 있습니다. 영국이 현재 수백명의 무고한 자국 군인들을 희생하면서 까지 전장에 투입한 아프가니스탄을 자원해서 간 사람은 다름 아닌 그 나라 왕위 서열 3위 해리왕자였습니다. 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도 그랬고, 우리나라 가수엔 남진도 그랬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의 상위 2%는 노블레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명예와 의무)라는 것을 몇명이나 실천할지 알수 없습니다. 막상 전쟁이 났을때 과연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의 상류층 남자들은 명예를 위해 의무를 다할까요? 

 

하물며, 가면 바로 총알받이가 될지도 모르는 전쟁터도 아닌데, 남자라면 모두가 가야한다고, 국민의 3대 의무라고 배운 병역 의무를 기피하는 자들에 대해선 응당의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이 바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의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나라 주요 대기업 자녀 혹은 대표들과 정치인과 연봉 수억의 잘 나가는 연예인들(건강하게 보이는 연예인들이 더하다고!)까지, 남들에게 모범이 되어야할 사람들이 과연 누구나 해야할 것을 했는지를 묻는 것이 바로 최근에 벌어진 사태에 대한 비웃음인 것입니다. 

 

통일이 되기 전 때까지, 아니 통일후 주변 강대국들이 우리나라를 가만히 두지 않는 한, 이 나라 남자들은 스무살이 되면 영장이 나올 것이며 그것은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군대를 제대한 남자들은 제대한지 얼마 안되었을때, 적어도 6개월내엔 수시로, 누구든지 이런 악몽을 꿉니다. 어느날 갑자기 집 앞에 군용 찝차가 도착하고 웬 헌병들이 들어와 영장을 내밀여 이렇게 말합니다."국방부에 서류상 착오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으나 당신은 다시 입대해야 한다"

 

결국 남자는 머리를 빡빡 깎고 한참 어린 동생들 아니 조카들과 박박 기는 훈련병이 되어 전부 처음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이 생기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고 울면서 깨면 벌떡 일어나 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요즘도 저는 가끔 그런 꿈을 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가면 남자들은 이십년 남짓 살아왔던 자기 인생을 처음으로 돌아보게 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계획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2010.12.03 조인원 / 조선_블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