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책(冊)

불멸의 저자들...알베르 까뮈

흔적. 2013. 12. 10. 12:13

 

까뮈의 '이방인'은 중학시절에 읽고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시 세상일이나 자신의 문제나 신경 쓸일 없는 아주 단순한 사고의 학생이였기에...대부분 아니였을까?

20대 중반 또한번 읽게 되다. 아웃사이더. 항상 언저리에만 있는 주인공과 언듯 동질감을 느끼며...

그런 후 지금, 잊고 있다가 기사를 보고 지난 일을 생각하다. 까뮈의 '이방인'

 

오늘 신문의 글이 퍽이나 관심끌다. 어쩜 기사의 글냄새가 좋았는지 모른다. 공감하는 부분에서의 표현이.

두고 읽어 볼 만 해서 가져오다.

또한, 체제에 대한 방관자적인 뫼르소를 함께 하며, 한편으로 제도권에 들어가고자 노력했던 지난 일도 생각되며.

 

- 학교에서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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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지 못한 것은 한낫 불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다."


-이방인의 삶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 반벙어리 어머니와 極貧의 삶
-드라마틱한 삶
노벨상 수상 뒤 극심한 우울로 은둔, 친구차 타고 가다 사고死… 당시 47세


   

프랑스에서 해마다 독자 20만명이 생성되는 소설이 있다. 원고지 500장 분량, 200쪽이 조금 넘는 얄팍한 소설책이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것은 독일군 점령하의 1942년 5월, 작가 나이 스물아홉 살 때였다. 첫 소설이었고, 프랑스 본토가 아닌 북아프리카 프랑스령 알제리 출신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알베르 카뮈,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소설사에서 이 첫 문장의 위력에 대적할 만한 작품은 흔치 않다. 이 첫 문장만으로 독자들은 소설의 제목이 '이방인'이고 주인공이 뫼르소라는 것을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어미의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날 여자와 자고, 태양이 내리쬐는 바닷가에서 아랍인 청년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재판정에서 살인 동기를 묻자 '태양'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사형이 언도되자 사형 날 많은 사람이 구경 와서 자신을 심하게 야유해주기를 바라는 사내가 뫼르소이다. 표면적인 줄거리만 보면, 뫼르소는 영락없는 성격파탄자(사이코 패스)이다. 그러나 소설의 심층, 곧 작품의 주제인 세계의 부조리와 인간의 반항에 초점을 맞추면 뫼르소의 의식과 행동에 동참하게 된다. 이때 뫼르소는 성격파탄자가 아니라 부조리한 인간 조건을 자각한 최초의 이방인으로 탈바꿈된다.

알베르 카뮈.
/조선일보 DB
알베르 카뮈는 1913년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 이주한 프랑스인 아버지와 스페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이듬해 아버지가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전사하고, 홀어머니 슬하의 극빈 가정에서 자랐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헐벗은 가정환경은 북아프리카 지중해안의 강렬한 태양빛과 형형색색 흐드러진 향초(香草)들과 대비를 이루며 카뮈의 문학 언어를 형성한다. 카뮈에게 태양은 본능이자 혼(魂)의 영역이다. 뫼르소라는 이방인의 존재를 전무후무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태양'이다.

카뮈를 한 사람의 작가로 성장시킨 것은 어머니와 장서가인 외삼촌, 초등학교 선생님과 고등학교 은사이자 평생 문우인 장 그르니에이다. '이방인'의 출판 과정에는 앙드레 말로의 열광적인 평가가 있었다. 변방인 카뮈의 출현은 파리의 문학 지성계를 전율시켰다. 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에다가 지성계의 중심에 있던 부르주아 출신 사르트르와는 근본은 달랐으나 '이방인' 한 편으로 문학적으로 어깨를 겨누는 문우가 되었고, 실존주의와 다른 노선의 '부조리와 반항'을 표방하며 사상적인 라이벌이 되었다.

변방인 카뮈가 태생지의 태양을 앞세워 중심으로 돌격했지만, 뒤에 남는 문제들이 있었다. 어머니와, 프랑스령 지지자와 독립파 사이로 반분된 태생지 알제리, 그리고 17세에 발병해 주기적으로 재발하는 폐결핵이었다. 문맹자로 귀머거리에다가 반벙어리인 어머니는 평생을 침묵 속에 살았다. '이방인'의 평이한 듯 극도로 절제된 문체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익힌 침묵의 심연을 행간마다 거느리고 있다. 알제리에 대해 카뮈는 식민 상태도 독립도 아닌 두 가지를 절충한 연방제를 지지했다. 전후 유럽은 숙청 문제, 사형 제도, 좌우 이데올로기의 시험대를 거치고 있었고, 작가들의 사회참여와 발언이 대세였으며,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던 때였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놀랄 만큼 초연하고, 주변 환경에도 비현실적으로 무관심하며, 어떠한 선택도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의 뫼르소라는 인간은 당시 시대 정서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적인 존재였다.

카뮈는 44세에 최연소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문단도 언론도 수상 소식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카뮈는 기쁨보다는 우울과 절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는 싸움꾼과 적들로 변한 문단과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의 루르마랭에 둥지를 틀었고, 절필의 불안감과 싸우며 초심으로 돌아가 자전적 소설인 '최초의 인간'에 몰두했다. 작가의 삶이 작품만큼이나 극적인 경우가 있는데, 카뮈의 마지막이 그러하다. 그는 기차를 타고 가려고 예매했던 티켓을 주머니에 넣고 친구의 자동차로 파리로 올라가던 중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고, 세월이 흘러 그가 태어난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된다.


[알베르 카뮈, 더 알고 싶다면…]

‘이방인’ 전후에 읽을 책으로, 스물세 살의 카뮈가 쓴 산문 ‘결혼’을 권한다. 수록작 네 편 중 ‘티파사의 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카뮈 연구의 대가 김화영 선생은 이 산문에 이끌려 평생을 카뮈 연구에 바쳤다고 고백한다. 카뮈 연구 30년 만에 현장을 찾은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은 두 겹의 여행을 실현시켜준다.

‘최후의 인간’은 유작이자 미완 소설이다. 카뮈가 자기 삶과 문학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점으로 써나간 자전적 소설이다. 카뮈 사후 34년 만에 딸이자 카뮈 문학 전문 편집자인 카트린 카뮈가 편집해서 출간했다. 세상의 모든 유작이 그렇듯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작가가 미처 다듬지 못한 문장과 채우지 못한 단락을 따라가며 완성해가는 의미가 있다.

 

2013.12.07. 조선.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