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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클로저'에 대한 서평

흔적. 2014. 3. 16. 10:39

영화 '클로저'를 무덤덤하게 홀로 보아야겠다. 시간이 許하면.


가을에 緣을 맺어 봄에 보내는, 가을의 삭막함과 겨울의 공허감을 메꾸며

짦디마나 한해 자양분이 되어준 기억들이 훗날 회상할 수 있을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로버트 킨케이트와 프란체스카 존스처럼...

봄이 오는것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봄이 되어 햇살을 비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익숙하지 못한 것에 대한 편견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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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품 그 도시] 사랑, 비극을 감춘 그 행복

 

심보선의 시 '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을 읽었다. 최고기온이 영상 13도를 넘긴 봄밤이었지만 아직 봄이라 말하기엔 바람이 차가웠다.

"그대에게서 밤안개의 비린 향이 난다, 그대의 시선이 내 어깨 너머 어둠 속 내륙의 습지를 돌아와 내 눈동자에 이르나 보다, 그대는 말한다, 당신은 첫 페이지부터 파본(破本)인 가여운 책 한 권 같군요, 나는 수치심에 젖어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묻는다, 여기 모든 것에 대한 거짓말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진실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덜 슬프겠는가, 어느 것이 먼 훗날 불멸의 침대 위에 놓이겠는가, 확률은 반반이다, 확률이란 비극의 신분을 감춘 숫자들로 이루어진 어두운 계산법이 아닌가."

나는 '여기 모든 것에 대한 거짓말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진실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덜 슬프겠는가'라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이것이 지금 내겐 사랑에 대한 거의 유일한 진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과 대형 시계탑 빅 벤의 불빛이 템스 강 수면에 비친 모습. 영화 ‘클로저’에선 미국 뉴욕에서 막 영국 런던으로 간 스트리퍼 제인이 길에서 우연히 신문사 부고 담당 기자 댄을 만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앨리스라고 속이고 댄과 연인이 된다. 하지만 댄이 사진작가 안나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들의 삶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지난해 봄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과 대형 시계탑 빅 벤의 불빛이 템스 강 수면에 비친 모습. 영화 ‘클로저’에선 미국 뉴욕에서 막 영국 런던으로 간 스트리퍼 제인이 길에서 우연히 신문사 부고 담당 기자 댄을 만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앨리스라고 속이고 댄과 연인이 된다. 하지만 댄이 사진작가 안나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들의 삶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 신화 뉴시스
영화 '클로저'의 첫 장면은 느린 화면으로 진행된다. 런던의 복잡한 횡단보도. 여자가 한 남자를 바라본다. 이들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자가 돌진하는 차에 치여 넘어진다. 여자는 죽지 않는다. 대신 남자와 동행한 병원에서 이마와 무릎에 간단한 처치를 받는다. 여자는 남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병원 휴게실에서 남자의 가방을 뒤진다. 그런 여자를 쳐다보던 남자가 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방 안 샌드위치 좀 먹지 그래요?"

"아뇨. 전 생선 안 먹어요."

"왜요?"

"바다에 오줌 누잖아요."

"애들도 그러는데?"

"애들도 안 먹어요!"

담배를 찾던 빨강 머리 여자의 이름은 앨리스. 그녀는 막 뉴욕에서 런던에 왔다. 앨리스는 남자와 함께 병원에서 나와 비에 젖은 런던의 거리를 걸어 포스트맨스 파크(postman's park)의 무덤 주위를 산책한다. 스산하기 이를 데 없는 런던의 날씨와 무덤은 잘 어울린다. 그렇게 스트리퍼 앨리스는 신문사의 부고 담당 기자 댄과 사랑에 빠져 동거를 시작한다.

앨리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댄은 자신의 책 프로필 사진을 찍던 사진가 '안나'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댄에게 애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안나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 그녀의 얘기를 훔친 거 아닌가요?"라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빌렸다'"고 말한다. 안나에게 빠진 댄은 피부과 의사 '래리'와 결혼한 안나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그녀의 전시회가 있던 날 다시 그녀와 재회하고, 불륜에 빠진다.

클로저의 내용 중 여기까지가 연인과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성실한 파트너를 배신하며 다른 사람에게 빠져드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그리고 서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들이 각자의 파트너에게 외도를 고백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영화의 카메라는 앨리스, 댄, 안나, 래리, 이 네 남녀가 서로를 어떻게 알아보고 무엇을 가지게 되는지 냉정히 관찰한다. 데이미언 라이스의 명곡 '더 블로어스 도터(The Blower's daughter)'가 영화에 기묘한 분위기를 씌운다.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란 후렴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진실과 포개어진다. '새로운 여자를 찾아낼 때까지'만 널 바라보겠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4년 만에 클로저를 다시 봤다. 그리고 적어도 내겐 "Hello! Stranger!(안녕! 낯선 친구!)"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앨리스에서 안나로 바뀌었단 걸 알았다. 스물일곱 살쯤의 사랑은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서른아홉 살쯤의 사랑은 행복이 아니라 전면적인 전투가 될 수도 있다. 안나가 남편에게 불륜을 고백하고 추궁당하는 장면에서 나는 이 세계의 수컷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의 구성 방식'을 엿보았다.

그 자식과 너는 잤나 안 잤나! 그 자식이 나보다 더 잘하는가 못하는가! 그 자식과 내가 어떻게 다른가! 결혼이 결국 소유의 문제이며 배타적 성기 사용권이라는 게 입증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혼이 아닌 연인 관계에도 그대로 대입된다. 우여곡절 끝에 재회한 댄과 앨리스도 똑같은 문제로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되니까 말이다. 앨리스는 결국 댄을 떠난다. 댄은 영원히 그녀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늘 내 일생을 100% 꾸며서 말하는 순간을 상상하곤 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 내가 하와이의 칵테일바에서 바텐더로 일했고, 아마추어 서퍼로 활동했으며, 두 아이의 엄마이며, 두 번째 이혼한 남자의 아내가 가장 절친한 친구라고 고백하는 순간 말이다. 결혼기념일이 2월 29일이라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그날을 전부 챙기지는 못했다고 목젖이 보이게 웃으면 좋을 것 같았다. 자신의 이름을 '앨리스'라고 말한 '제인'처럼 나 역시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통째로 빌려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것이 거짓이라도. 댄 같은 무명 작가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그대는 떠났는가, 떠나고 없는 그대여, 나는 다시 오랜 습관을 반복하듯 그대의 부재로 한층 깊어진 눈앞의 어둠을 응시한다, 순서대로라면, 흐느껴 울 차례이리라."

봄밤에 심보선의 시를 읽다가 클로저 같은 영화를 보면 대책 없이 허망해진다. 4년 만에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사랑이라 쓰고 섹스라 읽는 순간은 더더욱.


	'클로저' 포스터 이미지
 
클로저―주드 로, 내털리 포트먼,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언 주연. 마이클 니콜스 감독 연출

 

2014.03.15.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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