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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명량'의 해석

흔적. 2014. 9. 5. 12:27

명량을 보고 후기를 적을까하다 포기하다.

찾아보니 워낙 좋은 평의 글들이 많기에...공감의 글도 간혹 있으며, 전투보다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부터 역사의 흔적까지...그리하여 글쓰기를 접다.

 

그런데 뒷날 박해현의 글을 읽다. 다른 관점에서의 글...거창한(?) 리더쉽이나 전투보다 직무에 충실한 장군.

武官의 職務에만 충실하고자...나라의 武官 그것은 民을 향한 마음일줄이야. 왕보다 국가 보다 우선시 되는 民, 바로 민본사상의 근원이 아닐까? 오래전 삼봉부터 백범까지 이여지는 민본사상.

어쩜 김훈의 '칼의 노래'를 가장 잘 표현한것이 맞을 듯하다. 직무에 충실하게 개인의 실존적 의지로 전투에 임하였을수도 있겠다. 그냥 군인이니까. 장군이니까. 당위성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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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덕분에 요즘 서점에는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다. 130권이 넘는 이순신 관련서 더미 속에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다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이 1597년 다시 수군통제사에 임명된 뒤부터 시작해 명량대첩에서 이기고 이듬해 노량해전에서 쉰넷에 전사하면서 끝난다. "신(臣)에게는 배가 12척이 남았고, 신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라는 이순신의 장계(狀啓)가 '칼의 노래' 이후 널리 인용되기도 했다. '칼의 노래'가 오늘의 한국 사회에 제시한 이순신 리더십이라고들 했다.

'칼의 노래'가 70만부를 돌파하던 2005년 무렵 작가 김훈을 만났더니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정쟁을 일삼던 여야 정치인들이 이구동성으로 '12척 정신'을 내세울 때였다. 당시 참여정부의 정책기획위원장이 12개 국정과제위원회를 세우면서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에 비유하기도 했다. 김훈은 "이순신의 리더십을 현대사회에 도입한다는 것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무찔렀지만, 그것을 현대사회의 리더십 표본이라고 하는 것은 무지몽매의 소치다. 적(敵)이 330척의 배로 쳐들어올 때 우리에게 12척밖에 없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대의 진정한 리더십이다. 12척으로 경제난을 타개하겠다고 하는 뜻은 가상하지만 국민에게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칼의 노래'는 성웅 이순신의 전기(傳記) 소설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의 내면 독백이란 점에서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지금껏 역사소설이 궁중소설과 민중소설로 나뉘어온 이분법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김훈의 니힐리즘은 삶의 조건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현실을 적극 비판하고 부정(否定)한다는 점에서 체념적 허무주의가 아니다'는 평도 나왔다. '칼의 노래' 프랑스어판을 낸 갈리마르 출판사의 편집자도 "이 소설은 진짜 독창적"이라고 했다. "전쟁과 전투를 다룬 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 실존, 사랑과 죽음, 위엄과 자존심, 겸손에 대해 성찰한 작품이다."

'칼의 노래'가 그린 이순신은 충(忠)의 관념이 아니라 무(武)의 현실에 더 충실했다. 그는 무리하게 부하를 이끌고 적장의 목을 베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 상징성'을 임금에게 바쳐 충성심을 입증하려 하지 않았기에 탄핵받았다. 그는 다시 수군을 지휘하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가 적을 베면 벨수록 그를 시기한 임금의 칼에 자신이 베일 운명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적과 아군 사이에 낀 무인(武人)의 아이러니였다. 그는 무인이기 때문에 임금의 칼에 죽기 싫어 전사하기를 바랐고 그것이 '나의 자연사'라고 믿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이순신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런 측면에서 '칼의 노래'는 이순신이 조선 왕조를 위해 싸운 게 아니라는 느낌마저 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보이지 않는 광기(狂氣)에 맞서 개인의 실존적 전쟁을 벌인 듯했다. 아마 '칼의 노래' 일본어판 제목이 '고장(孤將)'이란 것도 작가의 그런 의도를 일본인 번역자가 헤아린 것은 아닐까.

197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대표작은 박경리의 '토지'를 비롯해 수난의 역사를 다룬 것이 주류를 이뤘다. 한국인의 집단 기억엔 '바람 잘 날 없는 풀밭 풍경'이 굳세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시 '풀'이 민중을 풍파에 시달리는 풀에 비유해 애송시가 된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칼의 노래'는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박힌 위기의식을 집단이 아닌 개인의 실존적 고독 속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 소설이 10년 넘게 널리 읽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생존의 고독이 과거보다 더 심화됐고 집단의 협력으로 극복하기 더 어려워진 현상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집단 윤리란 것도 이념 갈등에 사로잡힌 채 진영 논리에 그쳐 소모적인 정쟁(政爭)을 벌인 지 어디 하루 이틀이었던가. 공직 사회는 직업윤리가 아닌 '집단 의리'에 빠져 부패하고 무능할 뿐 아니라 치부를 덮기에 급급하지 않은가.

무장(武將)의 윤리에 충실했던 이순신은 개인 윤리에 성실한 인간형이었다. 옛말에 "문신(文臣)이 돈을 밝히지 않고, 무신(武臣)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라가 편안하다"고 했다. 이순신의 위대함은 그런 개인 윤리를 실천해 궁극적으로 나라를 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속한 국가는 무책임했고 무능해서 제 할 바를 다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400년이 지나서까지도 이순신의 '12척 정신'이 추앙받는 것은 역사의 비극인가, 희극인가. 그리고 과연 우리 사회에 배 12척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2014.09.02 조선일보 박해현 문화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