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록이, 점점 없어져가고 없애버릴려고 합니다. 위의 동북공정으로 아래의 식민사학으로...
근본이 없어지면 무엇이 남을까만은 그 흔적이라도 찾아서 기록으로 보존했으면 합니다.
정부가 아니면 돈많은 자본가가 유물, 고적, 유산, 인문학 등 비인기의 뿌리에 투자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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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6개월 전 사랑(舍廊)의 첫 원고 '선조들의 강, 대릉하에서'를 보낸 곳은 중국령 내몽골 적봉(赤峯)시였습니다. 세 곳을 전전한 끝에야 겨우 국제 팩스가 되는 호텔을 찾아 볼펜으로 쓴 원고를 보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심양(瀋陽)에서 교포 원로 역사학자와 함께 요하(遼河)와 대릉하를 건너 동이족 홍산(紅山) 문화의 본고장 적봉까지 찾아간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고조선의 강역을 나타내는 비파형 동검과 그 거푸집의 출토지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에 따라 한강 이북까지 자신들의 역사 강역이라고 주장하지만 비파형 동검과 거푸집 출토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데서 유물이 말해주는 힘을 느꼈습니다. '이덕일 사랑'의 문을 열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일제 식민사학이 왜곡한 우리 역사의 본모습을 복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세기 전의 일제 식민사학과 현재의 중국 동북공정은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둘 다 우리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해 가로채려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양자가 단군조선을 부인하고 고조선의 강역을 평안도 일대로 가두려는 공통점을 갖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를 본모습대로 복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선조의 강 대릉하의 푸른 물결과 너른 벌판이 생각납니다. 그 강과 벌판을 함께 누볐던 교포 역사학자, 그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싸웠던 그분은 얼마 전 고인(故人)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명복을 빌면서 사랑의 문을 닫습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이덕일 2009.03.31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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