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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즈와 벤츠가 부딪혔다면…

흔적. 2009. 4. 21. 09:37

가진 자의 기득권이 너무 팽배한 나라입니다. 저 위에서부터 저 밑에까지...

아마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보상심리이겠지요. 자본주의라면 할 말은 없지만

이젠 도덕이 없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허긴 교육이 그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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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의 여유와 포용은 없는 자의 제도적 순응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1980년대 초반 필자가 미국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맨해튼 링컨 터널 진입 지점에서 교통사고를 맞았다. 500달러짜리의 남루한 필자 소유 차량이 실수로 먼저 진입해 있던 벤츠 스포츠카의 앞쪽 문짝을 받은 것이었다. 값비싼 차를 받았으니 가난한 유학생 탑승자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벤츠 운전자에게 보험증서, 차량등록증, 신분증을 제시하며 죄송하다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벤츠 운전자의 반응은 의외였다. 오히려 탑승자들이 다친 데 없느냐고(Are you OK?) 정중히 반문하면서, 자신의 차량 손실은 자신의 보험으로 처리할 테니, 그냥 가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위기를 넘긴 순간, '와, 이런 일도 있구나, 내가 잘못했는데도. 저런 기품을 보이다니.'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날의 승자는 유학생 탑승자의 걱정을 풀어주고 자신의 기품을 견지한 벤츠 운전자였다. 필자는 그 뒤 귀국 후 여러 차례의 교통사고를 겪을 때마다 맨해튼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경제적 강자와 약자가 맞부딪혔을 때, 법, 계약 등 제도적 맥락 이전에 강자가 약자의 아픔을 달래는 자연스러운 대응이 그 사회의 공존을 촉진하고 공영할 수 있게 만드는 무언(無言)의 힘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만일 서울 청담동 사거리에서 마티즈 차량이 벤츠 승용차를 들이받았다면 어떤 양상이었을까? 차량피해에 대한 책임 분담은 논외로 하더라도, 마티즈 운전자가 겪는 자괴심과 굴욕감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사회나 '있는 자'와'없는 자'간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만큼 그 사회의 내적 경쟁력은 바로 '있는 자'가 격차를 완화하고 치유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기풍이 얼마나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경제적 부, 권력, 명예를 둘러싸고 '있는 자'의 주도적 노력이 '없는 자'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심어주고 공동체의 존재가치를 높이는 출발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진 자의 여유와 포용은 없는 자의 제도적 순응을 불러일으키는 데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며 의무이다. 만일 경제적 강자가 부동산세제 논쟁에서 보여준 것처럼 법과 제도를 고집하며 스스로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집착한다면, 더 나아가서 교만한 힘의 우위를 은연중 드러낸다면, 약자의 순응은커녕 공동체의 진정한 연대를 위태롭게 할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주는 지니계수가 2006년 기준으로 OECD의 평균수준(0.31)에 머무르고 있음에도 고·저 소득계층 간 심리적 양극화는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경제적 강자의 자발적 나눔과 베풂의 전통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낮은 데에도 그 연유가 있으리라 볼 수 있다.

일본의 교포 택시 사업자가 자가용차를 평생 타지 않고 택시로 출근하면서, 택시기사의 애환을 매일 점검하다 보니, 노조 결성하자는 기사가 아무도 없었다는 회고담에 우리 기업인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적 다수로 부상한 보수 여권 역시 소수파로 전락한 진보야권이 펼쳤던 도덕적 진의(眞義)를 너그러이 인정할 때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고, 다수결과 국회법 등 게임의 룰이 유연하게 준수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서울대학을 포함한 'SKY 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교수·학생들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보다 더욱 많은 몫을 사회에 환원하고 타대학 출신을 더욱 배려하는 겸허한 기품이 뿌리내려졌더라면 한때 SKY 대학이 우리 사회를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쉽사리 제기되었을까?

'있는 자'와'없는 자' 간의 마찰과 갈등을 치유하는 데 있어서 정부의 제도적인 역할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형태로 발휘되는, 낮은 자세로 임하는 '있는 자'들의 책임 있는 역할이야말로 사회적 통합을 도모하는 가장 소중한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무릇 인간 각자가 신으로부터 고유의 능력(talent)을 부여받았듯이, 약자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아픔을 어우를 때, 강자의 진정한 승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난 주말 4·19와 장애인의 날을 맞았고, 곧이어 춘투(春鬪)가 우려되는 노동자의 날, 그리고 보훈의 달을 맞을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정치적·경제적·도덕적 강자의 대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오연천 서울대행정대학원교수  2009.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