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하게 보이는 것도 전략이다
고려 성종 때 만주에서 세력을 키운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한다.
조정은 강경파와 화친파로 나뉘어 싸움을 하는데 이 때 서희 장군이 달랑 수행원 몇 명만을 이끌고 협상차 소손녕을 방문한다.
사람들은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란은 자진 철군하고 오히려 고구려 옛 땅이었던 압록강 변 강동 6주까지 되돌려 받는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 이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서희는 상대의 니즈를 정확히 읽었기 때문이다. 거란의 목표는 고려가 아닌 송나라였다. 그런데 송나라와 친한 고려가 뒤통수를 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서희는 "송 나라와 동맹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문제를 해결한다. 그는 협상을 끝내고 나오기 직전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 이대로 돌아가면 나는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국내에 워낙 친송파가 많기 때문이다."
당황한 소손녕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고 이에 서희는 "강동 6주를 돌려주시오. 그러면 조정에서도 별 말이 없을 것이오"라고 답한다. 하나 주고, 하나 얻은 셈이다. 그야말로 한국 최고의 협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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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후 청나라는 비슷한 이유로 조선을 쳐들어온다. 하지만 협상에 실패한 조선은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한다. 이만큼 협상은 중요하다. 얼마 전 끝난 6자 회담을 보더라도 협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제협상에서 가장 조심할 것은 문화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딴 생각을 하거나 오해를 하기 쉽다. 일본인은 웬만해서는 겉으로 거절하지 않는다. 당신의 뜻을 전하겠다, 고려해 보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노를 뜻하는 말이 수 십 가지는 된다. 하이라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그저 상대 얘기를 이해했다는 수준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중국 사람에게는 관계형성이 가장 중요하다. 식사를 하고 술을 같이 마시는 행위는 관계형성에 필수적이다. 협상은 그 다음이다.
인도 사람과는 파티 장소에서 협상 안건에 대해 얘기하면 안 된다. 미국인에게도 관계형성은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 사실과 정보이다. 관계가 나빠서 좋을 것은 없지만 그것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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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협상전략 몇 가지를 살펴보자. 우선 벼랑 끝 협상 전략이다. 북한이 자주 사용하는 이 방법은 상대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극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안전핀을 뺀 수류탄을 한 손에 쥔 채 협상을 하는 것이다.
고려인들이 중국에서 인삼 값을 높여 받기 위해 일부러 인삼 태우는 모습을 보여준 것,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료했다고 발표하고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이런 전략이다. 효과적이지만 위험하고 자주 사용할 수는 없다.
악역과 선한 역을 교대로 내세우는 것도 방법이다. 대북 핵 협상에서 콜린 파월과 로널드 럼스펠드의 전략이 그것이다. 강경파 럼스펠드는 지도부를 제거해야 한다, 제한적 공습이 필요할 지 모른다며 북한을 강하게 압박한다.
반면 온건파 파월은 달래기를 한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나와 협상을 마무리 지어라. 그렇지 않으면 매파인 럼스펠드가 득세한다. 그때는 초강경의 군사적, 경제적 제재가 이어질 것이다."
다음은 스트레스 협상 전략이다. 스트레스를 주어 가급적 빨리 협상을 마무리 짓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협상을 위해 호치민시 청사를 방문한 한국 대표가 에어컨 없는 방에서 곤욕을 치른 것도, 핑퐁 외교시 중국인들이 일부러 가래를 뱉어 상대를 불쾌하게 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이럴 때는 스트레스 상황 해결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지연협상 전략도 있다. GM 과 대우 협상이 그렇다. 경쟁하던 포드가 2000년 9월 인수포기를 선언하자 느긋해진 GM은 철저한 지연전략을 구사한다. GM은 2001년 5월까지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대우는 한 달에 500억의 적자가 나고, 시장 점유율은 33%에서 13.9%까지 추락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외에도 상대가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요란하게 요구하는 미끼전략을 조심해야 한다. 숨겨진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미끼 속에 핵심의제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위협도 협상 전략이다. 미국이 중국 정부에 지적 재산권 위반에 대해 시비를 걸자 중국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구입 예정인 통신장비와 보잉 항공기를 유럽에서 사 들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고도의 숙련된 협상가가 어딘가 허점이 많고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도 전략이다. 동정심을 얻고 상대를 방심시켜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속셈이 숨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협상은 정보전이다. 상대의 협상 목적, 약점과 강점을 파악해야 한다. 전략과 대안은 무엇인지, 내부 이해자간에는 어떤 갈등이 있는지, 시간에 쫓기지는 않는지, 협상 대표는 개인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아는 것도 협상의 키포인트가 된다.
글로벌 시대에 협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협상, 훈련되지 않은 협상, 상대를 모르는 협상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보아왔다. 협상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떠야할 때이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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