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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카이로스"

흔적. 2010. 11. 6. 13:17

서평을 읽다보면 도움이 될때가 많다. 짧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핵심을 전해주기에.

또 하나를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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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제이 하인리히 지음|하윤숙 옮김|B.O|469쪽|1만6000원

"유혹에 성공하고 싶은가? 상대방 생각부터 바꿔놓아라"

 

1988년 미국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 마이클 두카키스에게 TV토론 사회자 버나드 쇼가 물었다.

"주지사님, 사모님이 강간을 당한 뒤 살해당했다면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는 데 찬성하실 겁니까?"

"아닙니다. 내가 평생에 걸쳐 사형제도에 반대해 왔다는 것은 사회자님도 아시는 사실이지요."

이 한마디로 그의 지지율은 49%에서 43%로 하락했고 결국 대선에서 대패했다. 그의 대답은 정직하며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마음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이 대답은 두카키스에게 냉혈한, 위선자의 이미지를 가져다주었다.


설득과 논쟁의 달인인 저자는 "두카키스는 수사학을 몰랐기 때문에 로봇처럼 대응했고 결국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 두카키스는 어떻게 답했어야 대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저자의 대안은 이렇다. 쇼의 질문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반격이다.

"쇼씨, 유쾌하지 않은 질문이군요. 바로 그런 사고방식이 오늘날 우리 정치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아내를 이런 논의에 끌어들여서는 안 되죠. 제게 사과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장인의 좌익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내 아내를 버리란 말인가요"라는 반격이나, 결혼하라는 압력에 몰린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선언한 "나는 영국과 결혼했습니다"라는 반격과 맥을 같이한다.

수사학은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 설득하고 의견일치를 이뤄내 상대방으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수사학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키케로 등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수사학 대가들의 무궁무진한 기법들을 현대사회에 맞도록 곱씹어 우리 주변의 가정이나 회사, 정치현장 등에서 흔히 접하는 수사학적 사례들을 풀어낸다.

먼저 저자는 싸움과 논쟁을 구별한다. 싸움은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제압하려 하고, 논쟁은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대부분 이를 혼동한다. 아버지가 딸에게 지르는 큰소리는 싸움이고 사업제안은 논쟁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혼하는 부부의 대부분은 싸움을 한 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는 논쟁이 많다"고 진단한다.

수사학은 싸움이 아니라 논쟁을 다루는 영역이다. 저자는 키케로를 인용해 논쟁의 핵심, 즉 설득의 3단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한다. 둘째, 생각을 바꿔놓는다. 셋째, 행동에 나서게 한다. 지면으로 소개하긴 곤란하지만 저자는 파트너를 침실로 이끌 때도 이 3단계를 활용하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단계가 진행될수록 난이도는 점점 높아진다. 감정 자극의 예로 저자는 눈물바다를 만들어내는 설교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든다. 상대방의 생각을 바꿔놓는 달인으로는 키신저가 등장한다.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에게 정책대안을 제시할 때 고전적인 방법을 활용했다. 다섯 가지 대안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중간쯤에 배치했다. 십중팔구 닉슨은 키신저의 안을 골랐다.

문제는 가장 어려운 3단계다. 저자는 이를 "20대를 투표에 참여케 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바꿔놓은 다음 상대방에게 원하는 행동이 그렇게 힘들고 땀 흘려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광고인들이 이 부분을 집중 연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어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움을 받아 모든 논쟁의 수사학은 결국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책임소재에 관한 논쟁이다. '누가 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법정수사학'이라고 불렀다. 이런 유형의 논쟁은 과거시제이며 자칫하면 싸움으로 번진다. 둘째는 가치에 관한 논쟁으로, 어떤 것이 좋은가 나쁜가에 관한 것이다. 시제로는 현재다. 이런 수사학은 적과 동지를 가르는 연설에서 흔히 사용된다. 이를 '논증적 수사학'이라 불렀다. 그러나 법정수사학이나 논증적 수사학 모두 의견일치를 이끌어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첫째는 삼류, 둘째는 이류의 수사학인 셈이다.

셋째인 선택에 관한 논쟁을 저자는 일류의 수사학이라 평하며 시제는 미래라고 말한다. 부부싸움도 "내가 잘했니, 네가 잘못했니" 하는 삼류 논쟁이나 "나는 이게 좋다"는 이류 논쟁에서 벗어나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수준으로 나아가야 일류 논쟁이 되며 의견일치에 이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정책대안을 둘러싼 논쟁이 일류이고, 편 가르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이류, 과거사를 캐는 것은 삼류가 된다.

저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처럼 세 가지 수사법이 지니는 차이점을 잘 이용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실현, 성공적인 사업, 화목한 가족 관계 등을 도모할 수 있다." 이래도 한번 읽어보지 않겠느냐는 강력한 유혹이다. 수사학이 곧 유혹 아니던가?

 

2010.11.06  이한우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