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잡(雜)-劇,動,畵...

그림 감상에 대하여

흔적. 2011. 4. 12. 09:49

난 미술관, 사진전, 공예 등에 관심으로 주변에 갤러리나 전시회하면 찾는 사람중 一人이다.

아이들과, 혹은 친구들과...그러나 주로 혼자가게 되고, 같은 취미가 아니면 아니 간만 못하니..

그와중에 인터넷에 그림감상 글이 있기에 옮겨왔다. 훗날 필요할것 같아...

많이 보면 조금씩 쌓이는것 같다. 공부를 안한탓에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그래도 사진에 대한것은 확실히 보는 눈은 생긴다. - 구성, 광선, 빛, 시간, 날씨,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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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감상에 대하여

                 

 

흔히들 "나는 그림 볼 줄을 몰라서..."

"그림에 전문 지식이 없어서..."

 "그림을 이해를 못해서..."   등의 말들로 그림을 어려워 합니다.

특히 비구상의 경우 더욱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때 전문지식 없이도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눈에 보여지는 그대로 감정 표현하시면 됩니다. 내가 좋으면 대체로 남들 역시 좋아합니다.

                                       

환하다.화려하다.어둡다.슬프다.화려하다...

대체로 이것들 중 어느 하나일것입니다.

 

왜 그렇게 보여지는지는 화가들의 몫입니다.

그런데 위의 느낌들이 섞여 있다면 그것은 그림이 주관없이 그려진것입니다.

추상화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단순히 위의 개념으로 보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을것 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독 그림만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려듭니다.

음악은 감성으로 듣기에 작곡자의 의도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감성으로 받아 드리면 작가의도는 묻지않아도 작가와 일치하게 됩니다.

                                                        

 결국 그림을 보는 방법에서 사람들은 분석 능력을 생각하기 때문에

 비구상 계열의 그림들이 어려워 보이고 전시장에서도 쉽게 지나쳐 버립니다.

 

 그림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성격이 다양하듯 그림의 느낌 또한 종류가 많죠

 사람도 이랫다 저랫다하면 이해 못할 사람이되듯

 그림 역시 한가지 성격으로 정리되어 그려지면 보기 쉬워집니다.

 

 모나리자나 밀레의 만종같은 그림들은 이해의 겨를도 없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감성에 계속 빨려들어갈 것입니다.        

 피카소의 작품들을 보면 형태를 단순화 시켰다는 생각은

 아이들도 할 수 있을것 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면 피카소가 미술사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은 결국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되죠.

 물론 그 단순화는 그려 놓고 보니 그렇게도 원래 형태처럼 보일수 있다는것이죠.

 이것이 그림의 객관성입니다.

 혼자만 아는 그림은 개성이라 할수 없습니다.

 객관성을 가진 개성이라야  독특한 그림으로 인정 받을수 있습니다.

                    

 그러면 형태가 전혀 없는 비구상은 어떻게 될까요?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복잡한 느낌,따뜻한 느낌...

 느낌을 계속 부여잡고 있다면 접근이 쉬워지는데

 형태가 전혀 없어서 어느 순간 느낌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그런 그림을 자주 본다면 전혀 놓칠리는 없겠지요.

 비구상을 이상하게 보다가도 자주 보면 가까운곳에 있습니다.

 

 따뜻하게 보이는 그림을 계속 보고 있을때

 평화로움까지 느끼게 하는것은 화가들이 할일입니다.

 "이렇게 그리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한다"

 그러한 논리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에 그것은 그림 그리는 기술이 되겠죠.

 TV가 잘 나오면 잘나오는대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흐리게 볼수 밖에 없는것이죠.

 TV를 잘 만드는것 까지 감상자가 알필요는 없겠죠.

 

 그림은 눈으로 보는 예술입니다. 자신의 눈을  믿으면 됩니다.

 그렇게 많이 보다 보면 저절로 더 자세하게 보는 눈이 생기게 됩니다.

 또 그것이 지식이 됩니다.

 내눈에 보이는것을 마다하고 지식을 고려 한다면 점점 어렵게 보일것 입니다.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음악을 듣고 즐기는것 같이 생각하면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쓴이-진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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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감상법

사람마다 좋아하는 그림이 다르다.

사람마다 서로 좋아하는 취향이 다르다. 먹는 것에서 입는 것, 좋아하는 이성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취향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혹은 서로 이견이 생기면 '그것은 내 취향이 아니야'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면 그림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림에 대해서도 '그것은 내 취향이 아니야, 나는 그러한 그림을 좋아하지 않아!'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가? 아마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혹 등 뒤에서 '저런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하는 말이 튀어나올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이러저러해서 훌륭하고 세잔느는 이러저러해서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을 때 , 와 닿지도 않지만 적당히 어물쩍 넘어가거나 아주 공손하게 '제가 아직 그림을 보는 눈이 트이지 않았나 봐요' 하면서 넘어간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도 그런가? 아마 편치가 않을 것이다. '젠장 아무리 보아도 별것 아닌데... 피카소와 세잔느의 그림이 뭐가 좋다는 거야! 혹시 미술하는 놈들이 짜고 나를 골탕먹이는 것 아니야?'따져보고 싶지만 '에이! 무식한 내가 참아야지 무슨 봉변을 당할려고....' 하면서 입을 다물고 만다. 아마 이러한 일들은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했던 일일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소위 힘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래도 여러분은 여전히 '제가 뭐 압니까?' 하면서 겸손하게 뒤로 물러날까? 아니면 자신의 예술관을 적극적으로 옹호할까? 물론 지금이야 사회가 너무 전문화되어 권력이 있다고 해도 예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하지는 쉽지 않지만 힘을 지닌 개인의 취향이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과거의 권력자를 통하여 살펴보자.

우선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보자. 옛날 로마인들은 개인의 명예나 기념을 위해 초상조각을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인간을 이상화하여 표현하는 그리이스인과 달리 잡스런 세상일들에 대한 고민으로 움푹 패인 주름살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공화제에서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으로 전환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보통의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황제가 등장한 것이다. 지상의 신은 황제는 어떤 사람인가? 신의 대리자로 지상의 모든 일은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이 보통의 인간들같이 잔주름이 팍팍 패이고 고뇌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면 위엄이 서겠는가? 제정이 확립된 이후 로마의 조각은 변했다.

높디높은 권력과 권위를 황제의 얼굴에 반영하다보니 황제의 얼굴은 늙지 않고 인간적인 고뇌도 느끼지 않는 , 신도 인간도 아닌 중성적인 인간으로 표현되었다. 황제의 취향이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예술을 없애버리고 개인 숭배를 위해 중성적인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폴레옹 역시 비슷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일어났던 프랑스의 대혁명을 계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반혁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니폴레옹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화를 부활시킨 신고전주의를 정부의 공식 미술양식으로 후원하였다.

이 시기 화단의 나폴레옹으로 불리웠던 다비드는 영웅사의 형상화에 몰두하였다. 신고전주의는 영웅의 형상화를 위해 그리스. 로마조각을 열심히 연구하였다. 그러나 소위 황제양식이라고도 불리우는 신고전주의의 작품들은 정확한 소묘력과 장대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생동감이 떨어져 보인다. 그것은 신고전주의 작품들이 실제 인간의 모습이 아닌 그리스. 로마의 이상화된 조각에서 그 형식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1930
년대 독일을 완전히 장악한 히틀러 역시 자기취향을 강요했다. 히틀러는 당시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정신적 갈등과 사회적 모순을 강렬한 색채와 형태로 표현한 독일의 표현주의를 퇴폐미술로 낙인 찍어 작품을 몰수하고 파괴시켰다.

16
세기 독일 미술의 거장 뒤러 이후 침체된 독일 미술을 수 백년만에 세계미술사에 화려하게 등장시켰던 표현주의는 히틀러의 예술취향에 의해 무참히 박살 난 것이다. 대신 히틀러는 마치 고전주의의 아류 같은 고전풍의 그림들을 최고의 예술로 극찬하고 후원하였다. 20세기 초 러시아는 사회의 혁명만을 성취한 것이 아니였다.

미술에서도 혁명적인 업적을 이룩하였다. 당시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프로레타리아 국가였던 소비에트공화국은 물론 유물론을 바탕으로 미술과 생산기술을 결합시킨 새로운 미술을 필요로 했다. 그러한 요구를 만족시켜준 미술이 구성주의였다. 혁명 초기 사회를 완전 장악하지 못했던 사회주의 정권은 처음에는 구성주의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새로운 사회는 첨단예술에도 개방적이다.' 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930년대 사회를 완전히 장악한 스탈린의 태도를 180도로 바꾸었다. 난해한 구성주의를 관념적 조형실험만 지향하는 부르조아 미술로 낙인찍고 인민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구실로 억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 전위 예술가들은 해외로 도피하거나 자살, 또는 미술과는 상관없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후 소비에트공화국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만이 유일한 예술양식으로 인정되었다. 사람마다 각기 서로 다른 미술취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혹시 우리들 마음속에도 독재들과 같은 생각이 들어있지는 않는가? 물론 오늘날에는 여러분들이 힘이 있다고 해도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이 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사회가 너무나 전문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전술한 독재들과 같이 극단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강요한다면 문제가 따르겠지만 자신의 취향을 버리면서까지 전문가의 의견을 따를 필요는 없다. 전문가가 좋다고 해서 자기의 취향까지 바꿀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은 고흐의 그림이 좋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잭슨 폴록의 추상미술이 좋을 것이다.

그림은 자동차나 주택과 같이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림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이다. 삶의 이야기에 어떤 이야기가 좋고 어떤 이야기는 나뿐 것이라는 평가가 내려질 수가 없다. 자신이 타고난 체질이나 자라난 환경, 교육, 가치관에 따라 그림을 좋아하는 취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여타의 취향과 같이 그림 감상에 있어서도 '나는 이런 종류의 그림을 좋아한다.' 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라.
그림감상의 시작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