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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김훈 "현의 노래"

흔적. 2012. 3. 1. 09:10

김훈의 "현의 노래".

 

가야, 琴의 藝人 우륵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소리에 대한 이야기이며, 역사이야기 이다.

난, 그러한 이야기 이전에 김훈의 뛰어난 수사학의 펼침의 전개이다.

 

그 중 '오줌'에 대하여 쓴 글이 두세장을 장식할 정도의 사실적 표현과 심리...

글의 마술사다. 대단하다. 오줌 누는 동작하나에 이렇게 문장이 흘러 나오다니...

글이라는 것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글의 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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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p65~66)

아라는 치마를 올리고 속곳을 내렸다. 엉덩이를 까고 주저앉아 가랑이를 벌렸다. 허벅지 안쪽에 풀잎이 스치자 팔뚝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아라는 배에 힘을 주어 아래를 열었다.

쏴 소리를 내며서 오줌줄기가 몸을 떠났다. 떡갈나무 마른 잎에 부딪칠 때 오줌줄기는 물방울로 흩어지면서 탁탁 튀는 소리를 냈다. 침전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땔 때, 마른 삭정이가 타들어가는 소리와도 같았다. 덜 마른 밤나무 잎에 부딪힐 때 오줌소리는 젖어서 낮아졌고 돌맹이 위에 낀 이끼에 부딪힐 때 소리는 돌 속으로 스며서 편안했다. 오줌줄기 부딪히는 소리가 돌 속으로 스미자, 오줌줄기가 몸을 떠나서 쏴- 소리가 크게 울렸다. 몸속에서 살이 울리는 소리가 가랑이 사이의 구멍으로 퍼져나오고 있었다. 오줌을 눌 때마다 그 소리는 낯설고 멀게 들렸고, 소리를 내고 있는 살 구멍의 언저리가 떨렸다. 아라는 놀라서 오줌줄기의 방향을 바꾸었다. 마른 잎이 찢어지고 흙이 튀었다. 아라는 가랑이를 벌려서 오줌줄기를 펼쳤고 가랑이를 오므려서 오줌줄기를 모았다. 땅은 부채모양으로 젖었다. 아라는 대궐 침전 뒷숲에 오줌 누는 자리를 정해두고 있었다. 사슴우리를 지나서 작은 개울을 건너면 오리나무, 떡갈나무, 밤나무가 들어선 숲이 있었다. 바위가 뒤쪽을 막은 그늘아래, 아라는 판판한 돌멩이 두 개를 주워다놓고 그 위에 쪼그리고 가랑이를 벌렸다. 바위 밑에 물이 고였는데, 겨울에도 차지 않아서 뒷물하기 좋았다. 늦가을부터 봄까지 오줌줄기는 마른 잎에서 바스락거렸고 겨울에는 오줌줄기가 눈 속으로 피고들면서 더운 김이 올랐다. 겨울 눈밭에 쪼그리고 앉았을 때, 벌린 가랑이 밑으로 찬바람이 스치고 몸속의 살들이 오줌줄기를 따라서 바람 속으로 비져나올듯 설레였다. 아라는 엉덩이 밑에서 피어오르는 더운 김 속에서 제 몸의 냄새를 맡았다.

 

(p75~76)

아라는 침전 뒷숲으로 들어갔다. 달이 중천으로 올랐다. 달빛이 깊어서 숲은 안쪽까지 들여다보였다. 뱀이 풀섶을 스치며 달아났고 벌레들이 인기척에 울음을 그쳤다. 벌레 울음이 그치자 달빛은 더 밝아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위에서 달빛이 일렁였다. 아라는 속곳을 내리고 바위 밑에 쪼그려 앉았다. 흰 엉덩이에 달빛이 비치었다. 아라는 가랑이를 벌렸다. 오줌줄기가 가랑이 사이에서 터져 나올 때 아라는 으스스 몸을 떨었다. 맑은 오줌줄기에 달빛이 스몄다. 아라는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한 가닥으로 모아지는 오줌줄기가 떡갈나무 마른 잎에 부딪쳐 서걱거렸다. 잎이 뒤집히고 물방울이 튀었다. 몸속 깊은 곳이 떨렸다. 살의 떨림이 오줌줄기를 타고 몸 밖으로 뻗쳤다. 오줌줄기는 몸 쪽으로 쏘아져 나오면서 잦아졌다. 아라는 앉은 채 발을 굴러 가랑이 사이의 오줌방울을 털어냈다.

  속곳을 올리면서, 아라는 고개를 들었다. 능선 위로, 왕들의 무덤이 어둠 속에서 뚜렷했다. 봉분들의 둥근 윤곽이 끝없이 출렁거리며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무덤들은 하늘에 가득 찼고 그 위로 별들이 빛났다. 뱀들이 풀 속에서 바스럭거렸고, 벌레들이 일제히 울어댔다. 무덤과 별 사이에는 달빛과 벌레소리뿐이었다. 죽은 왕을 따라서 들어가는 구덩이 속 세상이 이러할 것인가, ---- 아라는 몸을 떨었다. 오줌 몇 방울이 속곳에 흘렀다. 아라는 일어서서 치마끈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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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는 가야왕의 시녀였다. 왕이 죽음으로 함께 묻혀야하는 42명 순장자들 한사람. 탈출한다.

탈출의 마음가짐, 계획, 원인 등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다. 삶에 대한 아스라한 표현뿐

그것으로 탈출의 원인을 나타낸다.

 

또한, 전쟁의 묘사에서도 글이 전광석화 처럼 빠르다. 생각의 기대가 어긋나게 한다.

그냥 軍將들에게 죽여라, 묻어라, 보낸다 이러한 짧은 단어가 죽임의 함축된, 전율을 가지며, 더욱 오싹하게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왠일일까. 빠져 들게하는 힘이 계속 책장을 넘기게 하며 여운을 가진다.

김훈의 내공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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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젊은 시절 이해인 시집을 보며 이렇게 아름답게 배열할 수 도 있구나 생각했고

용혜원 글을 읖조리며 평범한 단어로서도 훨씬 감성적으로 나오는것을 보며 감탄을 했다.

 

또, 김훈선생의 글을 접하고 하나 둘씩 읽었던것이 꽤 된다.

소장하고픈 마음에..(공차는 아이들,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강산무진, 화장, 자전거여행...)

그리고는 책과 결별(구매)한 후에 도서관에서 몇권의 책을 대여했다. 그 중에 한권. 현의 노래

떨리는, 기대한 마음으로 읽다 그냥 지나가기엔 뭐랄까...아깝다고 할까...적었다. 

 

글의 밀도..촘촘히 시줄과 날줄로 엮여있는, 아주 촘촘하게...김훈의 글은.

 

2012. 3. 1. 울산 다락에서.

 

* 순장자: 왕과 함께 묻히는 사람-문무신하, 시녀, 시종,구실아치, 남녀백성(궐내와 민촌 42명)

   - 궐내: 12명. 문무신하 2명,동서남북 호위무사 4명, 동서남북 사이사이 시녀 4명

   - 민촌: 30명. 농부 5명, 어부 4명, 대장장이 4명, 목수 4명, 늙은부부 2쌍, 아이딸린 젊은 부부 2쌍, 처녀

 

                       x                      x                        x

p173

가을이었는데, 낮고 먼 산줄기들이 바다에 닿아 있었고 강과 들이 넓어서 산에서 퍼지는 노을이 바다를 건너갔다.

 

p181

이것이 물이라구나, 물은 길고 넓고 멀어서 저편 끝에서 하늘에 닿는데, 물은 흘러서 바람과 같구나, 바람이 사람을 밀고 물이 사람을 띄워서 사람이 바람에 흘러가고 산들도 출렁거리면서 잇닿는구나, 바람이 몸속으로 불어 들어와 몸이 세상으로 퍼지고 산과 강이 몸속으로 스미는구나.

 

p234~236 '소리'에` 대하여.

바다는 만조로 부풀어 올랐고, 보름사리의 밀물이 이제 물러서고 있었다. 별들이 깔렸는데, 별과 물 사이에 소리가 가득했다. 소리가 바다를 건너오는 것인지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이 뭍으로 덤벼들 때 소리는 뭍으로 넘쳐 들어왔고, 물이 물러 설 때 소리는 끌려갔다. 끌려가는 소리가 다 끌려가기 전에 다시 물이 뭍으로 달려들어 끌려가던 소리와 달려드는 소리가 어둠속에서 부딪히고 뒤섞여서 함께 달려들었다. 그 소리는 세상이 아닌 곳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와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지우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귀에 들렸으나 들었다고 할 수 있는 소리는 아니였고 다만 불려가고 또 불려오는 소리였다.

... 중략 ...

소리는 귀로 들어왔고 입으로 들어왔고 콧구멍과 땀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우륵의 몸은 소리에 젖었고, 몸속에서 바람이 일고 숲이 흔들렸다. 우륵은 밤바다를 향해 아아아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