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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문학산책] 김훈의 우직한 '촌스러움'

흔적. 2011. 11. 11. 10:35

김훈에 대한 논평이다. 또한 흑산에 대한 평가일 수 도 있다. 흑산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져다 줄것이다.

그리고 김훈이 흑산에 대한 아니 역사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지금처럼 허울좋은 진보도 아닌 보수도 아닌 시각으로, 그시대는 어떡해 역사를 民草를 염려하고 살았는지를 이끌고 있다....어쩜 공직자 또는 지도층이라 일컫는 사람들에게 메세지도..(남한산성도 같은 맥락?)

진정 國家와 民을 위하면 어떠한 자세로 어떡해 삶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혹, 독자들이 오해하여 당쟁에 휘말릴까(이문열님, 황석영님처럼..) 경계를 하면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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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에게 南海는 문학의 텃밭 이순신이 전사하고
정약전이 유배된 곳 정약전 시대를 담은 '흑산' 가치중립 언어로 인간 그려
'내 역사 소설에선 누구도 온전한 실존 인물 아니다'

 

박해현 논설위원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의 의식 속에서 남해(南海)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뜻해왔다. 남해는 충무공이 죽은 곳을 기린 사당 '이락사(李落祠)'가 있는 곳이다. 남해에는 정약전(丁若銓)이 유배된 흑산도(黑山島)가 있다. 김훈은 십여 년 전쯤 정약전에 대한 산문을 쓴 적이 있다. '절해고도의 유배지에서 인간의 언어로 고등어를 설명하는 자가 되느니, 차라리 원양을 헤엄치는 등 푸른 고등어가 되는 편이 더 유복했으리. 정약전은 섬에서 죽었다'. 정약전은 십여 년 동안 어패류만 관찰한 책 '자산어보(玆山魚譜)' 서문에서 "자(玆)는 흑(黑)이란 뜻도 있으며, 흑산(黑山)이란 이름은 음침하고 공포심이 일어 집으로 보내는 편지에 자산이라 일컬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훈은 최근 장편소설 '흑산(黑山)'을 냈다. 정약전이 유배 간 섬이 소설의 한 축이라면, 그가 영영 돌아가지 못한 육지가 소설의 또 다른 축이다. 육지에선 부패한 관리들의 학정(虐政)에 시달린 백성들이 고향을 버린 채 떠돌며 굶주린다. 권력은 울부짖는 백성을 매로 다스리며 주리를 튼다. 현실에 절망한 백성들의 입을 타고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예언이 돌아다닌다. 왕실은 천주교의 삿된 무리를 뿌리 뽑는다며 피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정약전이 갇힌 섬보다 뭇 백성이 고통받는 뭍이 더 무서운 '흑산'이 된 시대였다.

이 소설에서 정약전은 "흑산을 자산으로 바꾸어 살련다"고 한다. "'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것을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김훈은 정약전의 입을 빌려 배교(背敎)를 변명하지도 않고, 순교(殉敎)를 예찬하지도 않는다. 그는 정약전이 가치중립의 언어로 '자산어보'를 쓰게 된 마음의 경로를 따라가려고만 했다. 그는 평소 "신념의 언어가 아닌 사실의 언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입장에 따라 이번엔 어패류를 기록하는 정약전을 작가의 아바타로 삼았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김훈은 정약전이 '자산어보' 서문에서 '흑산'이 아닌 '자산'을 쓴 까닭을 오랫동안 헤아리고 헤아렸던 모양이다. 김지하 시인이 '빛을 감춘 어둠'이란 뜻에서 '흰 그늘'이 민족 미학의 핵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훈에게 전화를 걸어 '흰 그늘'이 떠오른다고 했더니, 그는 "흰 그늘은 아주 무서운 말"이라며 "김지하의 시 '빈 산'을 다시 읽어보라"고 권했다. 김지하는 김훈이 청년이었던 1975년,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저 아득한 산/ 빈 산'이라며 자신이 수감된 시대를 '빈 산'에 비유했다. 김지하의 '빈 산'은 얼핏 죽음의 산 같지만, '숨어 타는 숯'이 있기에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이 될지도 모르는 생명의 산이다.

김훈의 '흑산'에는 젊은 날 정약전과 김지하를 읽으면서 체득한 비극적 서정의 언어가 가득하다. 김훈 소설의 미덕은 그가 지나온 생(生)의 곰삭은 맛이 골고루 배어 있다는 것이다. 김훈은 과거 소설과는 달리 '흑산'에서 수많은 등장인물을 동원했다. 정약전의 내면만 탐구하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조선 후기 사회상을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역사 속에서 '흑산' 너머로 가려는 인간 군상(群像)의 물결을 그려냈다.

김훈은 이번 소설에서 일러두기를 통해 "다양한 실존 인물이 나오지만, 허구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온전한 실존 인물이 아니다"고 분명히 했다. 실화를 다룬 소설이라고 하면 전부 사실로 혼동하는 세태에서 의미 있는 발언이다. 논픽션을 표방하지 않는 한 모든 소설은 허구의 산물이다. 김훈은 소설이 현실 구원의 언어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작가답게 자신의 역사소설을 역사라고 과장하지 않았다. 소설을 이념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풍토를 경계하는 뜻도 담겨 있다. 소설은 있었던 사실이 아니라 일어날 듯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임을 김훈이 다시 일깨운 셈이다. 김훈은 이처럼 문학 앞에서 언제나 진지하다.

요즘 서점에선 청춘의 감성을 대변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명단에 많이 오르고 있다. 풍자와 익살, 조롱이 담긴 글일수록 인기를 끈다. 어느덧 이순(耳順)에 접어든 김훈의 소설에는 유머가 없다고들 한다. 김훈도 '촌스러움'이라며 인정한다. 김훈 소설은 경박한 청춘 언어의 질풍노도 앞에서 일자진(一字陣)을 치고, 참을 수 없는 문학의 무거움을 사수(死守)하는 듯하다.

 

2011.11.07 박해현논설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