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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 신영복 교수에게 길을 묻다 (副題: 碩果)

흔적. 2009. 11. 4. 14:15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처음처럼"을 읽고, 곁에 두고픈 책이였다.

인문학에, 인간에 대한 신영복님의 사상에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연찮게 지인의 집(홈)에서 자료를 읽게되고, 다시금 정독하며  내 집에 걸게 되었다.

- 나오는 곡은 지인이 선택한 곡이다. -

 

찾다보니 "감옥~"은 돌베게 출판에서 나왔으며 그 출판사는 내 서적에 빠짐없이 꽂혀 있었던(과거)

"김용옥"님의 책을 출판하였던 곳이였다. 그 암흑기의 터널에서도 인문학(?)은 요동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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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석 碩

열매과 果

 

 

석과이다

석과란 하나남은 과실로 내년에 뿌릴 씨앗을 뜻한다.

일명 씨과실이다.

그러나 우리네 살림살이가 늘 넉넉하기만한것은 아니다보니

어떠한 경우는 이 남겨진 석과마저 일용할 양식으로 쓰여질 때가 있지 않는가 !!!

더욱이나 절박한 상황에서라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아닌가?

 

 

나의 석과의 실체는?

나는 과연 누구의 석과이었던 적이 있던가?

  

# (知人의 마음이다-평강)

 

네이버 바탕화면에 요즈음 세간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김재동(개그맨)이

지난 주말 서울 모처 강단에서 있었던 강연회에 성공회 대학 신영복교수가 강연을 하고

김제동이 사회를 맡았다고 하는 내용이 올랐다.  

 

나 역시도 정치성 발언을 온라인에서 하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강연 내용중에 누구라도 말의 뜻을 읽을 수 있는 입술을 한쪽으로 씰룩거리며

가벼히 웃음짓게 만드는 이헌령비헌령이라고 꼬투리를 잡고 늘어 진다면

충분히 가능하기도 한 내용도 눈에 띄이지만 어느 한순간도 과.오, 찬.반을 떠나

역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유유히 흐르는 시류의 연속된 순간들이다.

 

역사의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그곳에는 무대의 감독도

스텝도 또 주연배우, 조연배우를 비롯하여 관중이라는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너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지성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들이 있어서

 

타인의 발언을 어느것이라도 맘대로 손댈수 없는 이유로, (여기서 나는 나의 글 선생님으로 부터

이를 지키지 않는 못된 버릇때문에 지금은 서로 소닭 보듯하는 관계로 남겨진 여지까지 모두 다

정리를 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그대로 다 여과없이 내용을 복사하였다.

#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조태근 기자taegun@vop.co.kr
방송인 김제동씨가 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묘비를 쓰셨는데 선생님의 묘비에는 무슨 글귀가 쓰여져 있었으면 좋으시겠어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너무 이른 질문 아닌가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사람이 세상에 남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후배들이 나와 관련된 글을 은퇴 기념으로 책으로 만들었는데 사실관계가 틀린 게 굉장히 많았어요.
'이것을 어떻게 하나' 싶었죠. 그런데 그대로 두자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남는 방법이 그것 아니겠습니까.
묘비명 없는 것도 좋겠고요 틀려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것으로 남는 게 좋지 않겠나 싶습니다"

김제동

23일 서울 이화여고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신영복 교수 초청강연에서 방청객들의 질의응답 시간을 진행하고 있는 김제동씨.ⓒ 사진제공=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신영복 교수는 23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김제동,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강연에 참가한 400여명의 시민들에게 깊은 '기억'을 남겼다.

'민주주의를위한시민네트워크'(민주넷)가 주최한 이날 강연에서 신 교수는
씨과실, 사람, 숲 그림을 그린 뒤 이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변화, 관계에 대해 얘기했다.
강연 내용은 '더불어 숲',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을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그리 새로운 게 아니었지만, 신 교수는 이날 방청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에게
'작은 약속'을 만들 기회를 주었다.

"오늘 내가 하는 얘기는 이미 다 아는 얘기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선생을 했지만 학생이 모르는 것을 선생이 얘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꺼내서 한 번 확인하는 것이지요.
왜 확인하느냐면 확인하면서 서로 위로받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고,
작은 약속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성공회대 교수 3명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포크그룹 '더 숲 트리오'는
이날 강연 앞뒤로 '광화문 연가', '뭉게구름' 등의 노래와 재치있는 입담으로 마치
대중가수 콘서트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더 숲 트리오'에서 기타를 맡고 있는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영복 선생님 강의에 따라다니는 별책부록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신 선생님과 같이 보내는 게 너무 영광스럽고 좋았다.
이런 분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아름다운 사람'을 부르기도 했다.

진행을 맡은 김제동씨는 최근 KBS 예능프로그램 하차 논란을 의식한 듯
강연 무대 첫머리부터 "힘든 일을 겪는다고 말하시는데 전혀 힘들지 않다.
아무 걱정 하지 말아달라. 저보고 힘들다고 묻지도 말아달라.
문을 여는 문지기 역할로 나왔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난 뒤 무대 뒤에서도 기자들에 둘러싸인 김제동씨는 방송 하차 관련 심경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피했다.

이날 방청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영화배우 문소리씨가 깜짝 질문자로 등장해
"꼭 애기를 많이 나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져 신 교수로부터 "낳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보호해 부모가 원하는 대로 키우려는 데서 나오는 관심은 줄여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청소년들을 위해 지방강연 등을 가지실 계획이 없느냐는 김제동씨의 질문에
신영복 교수는 "오늘 강연에 많이 모이신 것은 설이 분분하다.
김제동씨 때문에 모였다는 얘기도 있다.
김제동씨가 자리를 만들면 청소년들이던 나이 많은 분들이던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신영복 교수는 '더 숲 트리오'와 함께
정태춘.박은옥의 '떠나가는 배'를 함께 부르며 이날 강연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신영복 교수의 이날 강연 전문이다.

"저도 오늘 아침까지 무슨 얘기를 할지 결정을 못했다.
이 가을에 한번 생각하고 넘어갈 얘기를 나누겠다.

사실 저보고 스승이라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스승이라는 것은 당대에는 없는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표가 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억지로 나를 스승이라고 하는데, 어느 시대에나 당대에는 스승이 없다.

지지난주에 전남 강진 다산초당에 다녀왔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면 그 시대의 다산이라는 분이 있었다는 사실이 어쩌보면
우리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당대에는 다산이 전혀 스승이 아니었다.
유배와서 있는 사람이었다.
당대 사회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지적하는 역할을 스승이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주류에 의해 늘 배재된다. 그래서 스승이 될 수 없다.
스승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당대에는 스승이 없다.

길도 마찬가지다.
이미 나 있는 길은 누가 못가겠나.
길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러분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어가면 등 뒤에 길이 생긴다.
길을 물을 것이 아니라 길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러 저런 얘기를 논리적으로 진행하기는 어려워서 그림을 준비를 했다.

신영복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3일 서울 이화여고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씨과실' 그림을 그리며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겨울바람이 부는데 하나 남아 있는 과실이 씨과실이다.
먹지 않고 키워서 씨로 쓰는 것이다.
석과(碩果)다.
다음 그림은 머리, 가슴, 발. 그다음 그림은 숲이다.
이 세 그림을 왔다갔다 하면서 얘기하겠다.

석과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여기서 머리, 가슴, 발 그림을 거쳐 숲으로 가는 과정이 바로 길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많은 사람들이 자기 경험으로 얘기하고 있다.

처음 할 일은 잎사귀를 떨궈내는 것이다.
엽락(葉落).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을 탈출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엄청난 문맥을 거둬내야 한다.
우리가 갇혀 있는 틀을 벗겨내는 게 첫번째다.

잎사귀를 벗기면 한 개인의 뼈대가 드러난다.
체로(體露)다.
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자립은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근본적인 뼈대, 다시 말해 잎사귀에 가려져 있던 게 드러나게 된다.

엽락한 잎사귀가 뿌리(本)를 따뜻하게 거름하고 있다.
분본(粉本)이라고 한다.
여기서 '뿌리'가 무엇을 뜻하냐 하면 한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인 사람이다.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을 키워내는 일, 그것이 가을.겨울을 견디는 일이다.
사회의 가장 저력으로 묻혀 있는 가능성들을 키워내는 일을 함축하고 있다.

다음 그림은(머리, 가슴, 발 그림) 사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나.
책, 선생, 신문.TV보고 아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우리의 인식은 주입된 것이라고 한다.
그 사회의 상부 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입한 게 많다는 것이다.

엽락을 말할 때 문맥을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중세에는 마녀처형이 있었다.
마녀라는 문맥이 있었다.
지금 숫자를 파악 못할 정도로 수십만, 수백만의 마녀들이 처형됐다.
처형당한 마녀 중에는 자기가 마녀라는 사실을 승인하고 처형당한 사람도 있다.
중세를 지배했던 완고한 마녀문맥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 시대는 어떤 문맥에 갇혀 있는지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근대사회에서 쌓인 강고한 문맥이 있다.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논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근대적인 문맥에 우리가 갇혀 있다.

이런 현학적인 얘기보다 경험을 나누는게 좋겠다.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긴 여행에는 눈물나는 일들이 많다.
만나는 것이 많은 지식을 갖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문맥을 떨치고 나오는 것이다.
재소자들은 미적 정서도 뛰어나다.
담배값이 비싸 직원 사무실 청소하는 재소자는 꽁초를 줍는게 가장 큰 일이었다.
그래서 교도소에서는 모든 재떨이에 물을 가득채워 놓는다.
다행히 물에 빠졌지만 풀어지지 않은 꽁초를 꺼내 피우거나 팔기도 한다.
물론 젖었던 것이라 맛이 좀 심심하긴 하다.
물에 빠졌다 건진 담배꽁초의 이름을 교도소에서는 뭐라 부를까. '심청'이었다.

감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 30여명이 같이 (구속돼)들어갔는데 독방에 들어가
책만 보겠다는 사람도 있고, 재소자들과 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제가 근대문명에 속한 사람인게 재소자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왜 강도가 됐을까, 왜 절도를 했지, 가정환경이 나쁜가', 이렇게 분석을 했다.
근대사회가 대상화하는 것과 똑같았다.
그러니 아무리 친한 척 해도 왕따였다.
자기를 분석하고 대상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한 방에서, 같은 작업장에서 살다보면 많은 얘기를 듣게 된다.
그사람이 들어온 파란만장한 삶의 얘기를 들으면,
나도 저 사람과 같은 부모 만나 살았으면 저자리에 같은 죄명으로 있겠구나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한 방에 있었다.
저녁에 신입자가 새로 방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냉랭하다.
긴장한 분위기에서 이 노인네가 신입자를 굉장히 반가워 한다.
어른들이 묻는 질문 한두가지를 한다.
아픈 데 있는지, 부모님은 있는지 얘기한 다음에 자기의 칠십 평생 얘기를 시작한다.
그 얘기는 신입이 들어오는 그날 시작해야 한다.
하루이틀 지나 그 할아버지가 별볼일 없다는 것을 알기 전에 얼른 얘기하기 때문이다.
신입자가 들어오면 우리도 그 준비를 한다.
할아버지가 중간에 몇 대목을 빠뜨리면 우리가 채워주기도 한다.
2~3년 지나면서 이분의 히스토리가 근사하게 각색이 되고 있었다.
마치 드라마 같이 말이다.
주변에서는 '저 노인네 또 구럭 부리고 있네'라고 우스개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바깥에 비가 오는데 감옥 창살에 기댄 할아버지의 모습을 봤다.
참 쓸쓸한 모습이었다.
만약 저분이 다시 자기 인생을 시작한다면 실제 삶보다 각색한 정도의 삶을
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각색한 것을 보면 삶에 대한 약간의 반성도 있고,
이루지 못한 소망도 들어 있으니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겠느냐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분을 사실 그대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각색된 사람으로 이해할 것인가 고민했다.
사실대로의 자기의 삶이라는 것도 우리나라의 파란만장한 현대사가
각색한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분석과 이성적 판단보다는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역시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long long longest'한 거리다.
저는 그 거리가 한 5~7년이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왔을때 드디어 왕따를 면했다.
그래서 머리보다는 가슴이다.
가슴에다 두 손 얹고 반성하라 하지 머리에 손 얹으라 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학자들이 언젠가 TV에서 심야토론을 한 결과 내린 결론이 '가슴이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을 구출해서 치료한 대목이 나온다.
그것은 머리가 한 것인가, 가슴이 한 것인가.
가슴은 세계를 조직하는 일을 한다.
'저 사람을, 쓰러진 사람을 나의 세계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가슴이 결정한다.
머리는 그 다음에 '치료비는 1~2만원 정도 줄까'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니체는 '진리는 용기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거름한다는 것은 머리로부터 가슴까지의 그 먼 여정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을 자기 세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아픈 마음들을 자기 삶의 내부 깊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을 저는 발이라고 한다. 바로 '관계의 건설'이다.

사실 근대사회는 냉정한 개인의 자기존재성을 중심으로 한다.
물론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한 게 굉장히 혁명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방식의 폐단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근대사회 최대의 도덕적 가치는 똘레랑스라고 할 수 있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관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똘레랑스가 과연 최고의 덕목인가.

숲

'더 숲 트리오'와 신영복 교수가 함께하고, 김제동씨가 진행한 질의응답 시간ⓒ 사진제공=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감옥에서 저는 연민, 우월감, 차이를 버리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언젠가 육상 100미터 세계기록을 가진 우사인 볼트가 세계기록을 세우고 거만한
세레모니를 하니까 프랑스인인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동료 선수들에게
지나친 모멸감을 주는 세레모니는 삼가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모멸감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로게 위원장만 느낀 것이었다.
거기서 저는 똘레랑스의 내용이 뭘까 생각하게 됐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다.
같이 방쓰는 친구중에 대의(大義)라는 이름이 있었다.
이름이 좋아서 그 사람 아버지가 (아들이 감옥에 있어)참 속상하겠다고 생각했다.
절도전과 3범이었다.
그에게 '이름이 얼마나 좋은데 이름값을 못하고 있느냐'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부모가 없는 고아였다.
전남 광주 대의동 파출소에 버려져 동네 이름을 따 대의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저에게는 그때가 충격이었다.
문자로 그 사람을 읽으려 했던 먹물의 천박한 관념성,
이것을 내가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나이 많은 목수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주춧돌 부터다.
맨 나중에 지붕을 그린다.
아주 서툰 목수의 그림에서 또 충격을 받았다.
일하는 사람들의 그림은 집 짓는 순서대로 그린다는 것을 보았다.
책, 교실, 학교에서만 배웠던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었다.
이런 관념성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차이는 공존, 존중이 아니라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제가 말한 게 아니라 들뢰즈, 가타리가 말한 것이다.
자기가 변화하지 않고 지금 화두가 되는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자기 의견의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화가 대단히 중요하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부단히 변한다.
자기 영토를 고집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은 변화를 거부한다.
젊은이들의 정서는 웹2.0이다.
한사람 한 사람이 서버(server)라는 것이다.

그러한 애정이라던가 이해, 공감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만이 진정한 자기변화를 할 수 있다.

저는 대학 선생을하다 감옥에 갔다. 감옥에서 제 별명이 '떡신자'였다.
모든 위문품이 나오는 종교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떡신자가 되기도 어렵다.
각 종교마다 명단이 다 있어서 기독교 쪽에서 데리러 오면 기독교 신자에게만 떡을 준다.
나는 여러 종교집회에 가면서 '징역이 무기니까 종교 하나 더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제가 그런 떡신자를 20년간 꾸준히 했다.
그래서 떡신자들끼리 만나면 굉장히 다정했다.
치부를 공유하는 관계가 굉장히 인간적이지 않나. 변화, 관계를 만들어 내는 눈물겨운 일을 해야 한다.

제가 왜 이말을 하느냐면 우리사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 아직도
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 이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조하려고 하는 근대문명에 갇혀 있는 사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계속 변화해야 한다.
변화해서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사회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오대산을 제가 자주 간다.
지난 번 갔을 때는 오대산에서 비가 내렸다.
저쪽으로 흐르는 물은 북한강, 다른 쪽으로 흐르는 강은 남한강이 된다.
그래서 서해로 빠져나간다.
굉장히 먼 여행이다.
반면 오대산에 있는 바위는 거기 그대로 있다.
시냇물은 제가 자주 부르는 노래다.
그 노래에는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는 가사가 나온다.
부단히 변화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영토싸움, 이해관계를 버리고 변화하는 것이 노마드, 탈근대의 화두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부단히 변화하면서소통하고 바다로 가야지 자기는 변화지 않고 공존만 하자는
똘레랑스는 근대적 패러다임의 변형일 뿐이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서 발은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삶의 상징이기도 하다.
머리-가슴-발, 이게 하나의 나무라면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나 낙락장송이 아니다.
나무의 최고 형태는 숲이다.
그래서 오늘 얘기는 석과에서 시작해서 엽락, 체로로 시작해서 숲으로 간다.
혼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제가 '길고 긴 여행'을 마칠 즈음에 '나는 근대적인 문맥에서 시원하게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연민, 공존, 공감의 변형을 뛰어넘어 떡신자들처럼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었다.
기술도 배웠다. 자기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역사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지만, 나 자신을 바꾸는 데는 성공했다고 자위한다.

복역 중에 어머니가 위독해서 귀휴를 한 적이 있다.
사복을 안 입고 수의를 입고 갔다. 내내 수의를 입고 서울에 있었다.
친구들이 밥먹자고 해서 롯데호텔 라운지에서 아이리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나서 출소한 뒤 몇 년 전에 제가 그 커피숖에 다시 가 앉았다.
마침 수의를 입고 앉았던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거기서 그때처럼 아이리시 커피를 시켰다.
그리고 '과연 내가 변했는가' 심각하게 생각했다.
또 광주 대의동 파출소 찾아가서 '대의가 여기서 발견됐구나'하며 대의를 통해
내가 어떻게 변했나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런데 출소하고 나니까 많은 이들이 칭찬하려는지 '너 하나도 안변했다'고 한다.
감옥에 가기 전이나 출소하고 나서도 계속 선생을 하니까 변한 게 눈에 띠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하기도 한다.

제가 내린 결론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다.
내 개인의 변화를 도모한다는 것은 아직도 근대적인 사고에서 덜 벗어났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변화도 관계에서 가능하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그래서 관계다. 나무의 완성이 숲이듯, 변화의 완성은 관계다.
그래서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김제동씨는 나에게 길을 묻지도 않았지만, 길을 물으면 숲이다.

제가 처음 낸 서예작품이 '여럿이함께'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서체를 감옥체라고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럿이함께'라는 메세지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여럿이함께'는 좋지만 이것은 방법론이고 가치지향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로 가자는 게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함께 가면 길은 등뒤에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여럿이함께' 뒤에 그렇게 부서를 했다.

우리가 가진 근대적인 사유의 흔적이 도처에 있다.
뭔가 이상적인 것을 제시하고, 거기서 우리 실천의 과제를 내려받는 거꾸로 된 생각 말이다.
길은 등 뒤에 생긴다.
숲이 길이고, 숲이 스승이다.
우리는 스승이면서 제자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모인 것도 숲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숲이다. 웹2.0처럼 흩어졌다가 모이는 숲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하는 얘기는 이미 다 아는 얘기다.
저는 오랫동안 선생을 했지만 학생이 모르는 것을 선생이 얘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같이 꺼내서 한번 확인하는 것이다.
왜 확인하느냐면 확인하면서 서로 위로받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고
작은 약속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돌에 새겨진 비문 (Надпись На Камн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