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다. 그 무언가가...성급한것도 문제지만 미루는것은 더더욱 문제다.
댓글에. '현역과 미필의 차이'라고 했다.
"경험하지 못한 자는 결코 行하지 못한다. 行한다면 시기는 지나갔을 것이다."
운동선수가 왜 꾸준히 하는지, 상항에서 즉시 대처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계란 표현으로...그분을 선택한 국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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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8월18일 판문점에서 미류나무 가지치기로 촉발된 "도끼만행사건" 이 발생한다.
미군 2명이 현장에서 즉사하자 미국은 즉시 "데프콘 3"를 발동하고 준전시 상황에 돌입했다.
문제의 미류나무를 아예 베어버리기로 하고 이때 만일 북한군의 행동이 있을경우 북한에 선전포고를 한다음 황해도 까지 점령해버리자는 한미연합의 계획아래 육해공 전투장비들은 최전방에 배치됐다
이때 미국은 한국군에게, 미류나무 절단시 "경계병"으로 참여해줄것을 요청하였는데 총기는 휴대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북한이 미류나무 절단시 공격을 해오면 그때가서 생각하자는 취지였고,미류나무를 베어버리는 조치만으로 응징의 댓가는 충분하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선공격시 북침계획"을 어긴건 박정희였다.
왜 우리가 당했는데 미류나무만 베고 끝내야 하느냐는 불만이었다.
그때 박정희의 집무실에는 철모와 군화가 놓여 있었다.
보복공격을 본인이 직접 진두지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박정희는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노재현에게 "보복공격"을 지시하고 지시를 받은 장성들은 당시 1공수여단장이었던 박희도 준장에게 거사자금까지 주며 독려했으며 박희도의 지시를 받은 김종헌 특공대장은 64명의 정예특전사를 조직하여 "818 보복팀"을 만들었는데 그는 대원들에게 "북에서 죽을각오를 하라"며 유서를 쓰게 하였다.
미류나무 절단을 위해 모인 미군들이 한국군을 보고 놀란것은 한국군의 무장병기 때문이었다.
권총과 m16 , 크레모아까지 휴대하고 나타난 한국군은 미류나무 절단시 북한군의 반응이 없자
미군의 만류에 아랑곳없이 북의공격을 유도할 목적으로 판문점의 북한 초소를 전부 부셔버리기에 이른다.
그러나 끝내 북한군은 아무 반응이 없었고 한국군은 아무일 없이 철수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김일성이 "인민군 최고 사령관"의 이름으로 사과문을 발송하여 사건은 종료 되었다. 이때 박정희가 했던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말은 그당시 국민들의 국방의식을 고취 시키기에 충분했다.
나약한 청와대여! 썬그라스를 끼고 박정희의 흉내를 낸다고 박정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대초계함이 두조각이 나고 무려 50여명의 장병들과 민간인이 희생된 북한의 만행 앞에
판문점의 어린묘목도 꺽지못할 나약한 정신자세로 도대체 경제는 살려서 무엇에 쓸려는고?
저런것들은 군복입혀 계급장을 때고 백령도 백사장에 뺑뺑이를 돌려 썩어 문드러진 핏속의 기름끼를 빼줘야한다.
김동홍(tjwlsdl40) [2010-04-16] / 조선토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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