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말짱’ 성공시대
[한겨레] 대화법 알려주는 책들 쏟아지고 기업마다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열올려…‘말꽝’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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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각 대학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은 ‘교수학습센터’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무슨 ‘학습’을 받는 것일까? 지식은 많지만 전달 능력이 떨어지는 교수들이 넘치는 탓에, 학교 당국에서 보다 못해 만든 일종의 ‘교수법 클리닉’이라고 한다. 안다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차이가 있다.
누가, 왜, 무엇을 말하나
한 공기업의 ‘사장님’이 지역 순례에 나섰다. 인력 개편으로 술렁일 때라 각 지역의 직원들을 다독이려는 목적이었다. 한 지역의 간담회장. 말단 직원 한 명이 사장의 말이 끝난 뒤 손을 들고 얘기했다. “일할 사람이 모자란다, 힘들다”는 요지였다. 어눌한데다 긴장된 목소리였지만, 누구라도 그가 말하려는 바를 알 수 있었다.
말 잘하고 글 잘쓰기로 유명한 사장은 곧바로 각종 데이터를 들었다. 경영진의 논의 과정에 더해 자신의 억울함도 밝혔다. 청산유수였다. 하지만 사장은 나중에 “뭐하러 왔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본인은 ‘설득’하려 했겠지만 직원들에게는 ‘논쟁’을 한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사장의 설명은 회사 정보망을 통해 ‘자료’로 전달되면 그만인 내용이었다. 사장은 그 자리에서 자기 올바름을 강변하려 하기보다는 “당신들 심정 잘 안다”고 ‘위로’하고 최대한 직원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편이 좋았다.
누가, 왜, 무엇을 말하는지는 말하기를 구성하는 3대 요소다. 위의 두 사례는 대표적인 ‘말 못한 사례’다. 교수들의 강의는 ‘왜’를 망각한 것이고, 사장의 논쟁은 ‘누가’ 말하는지를 잊은 탓이다.
말하기가 경쟁력이다. 각종 대화법과 기술을 알려주는 책들이 앞다투어 쏟아져나온다. 각 기업에서 전력을 다해 교육하는 주제도 ‘말하기’다. LG그룹은 2004년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포괄적으로 해왔던 ‘커뮤니케이션 스킬 교육’을 직급별로 세분화해 실시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매너와 역할 지정(롤플레잉) 실습’, 프레젠테이션 실무 교육 등이다.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내용은 ‘면 대 면 역할 지정 실습’이다. 그만큼 의사소통에 목이 마르다는 뜻이다.
조직이나 사회생활에서 별다른 ‘자원’이 없어도 말 하나로 ‘뜨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히 ‘말짱 성공시대’다. 최근의 대표적인 인물은 각종 시민·인권단체 집회에서 ‘거리의 사회자’로 십수 년간 마이크를 잡아왔던
그의 가장 큰 밑천은 10년 넘도록 서울 상계동 어머니학교에서 글을 가르쳐온 경험이다. ‘듣는 사람 처지에서 일상어로 쉽게 말하는 것’이다. 군중 앞에서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오셔서 감사합니다”보다는 “여러분 밥은 드셨습니까?”라고 첫 멘트를 여는 게 효과적이다. 두 번째 밑천은 ‘확인 또 확인’이다. 어떤 규모의 집회든 마치고 나면 가까운 이에게 “오늘 어땠어?”라고 묻는다. 대부분 “좋았어”라고 덕담을 하는데, “진짜 잘했어?” 정색을 하고 물으면 그제야 “조금 빨랐어” “말이 울렸어” 등의 ‘피드백’이 온다. 최씨가 꼽는 마지막 밑천은 ‘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그래야 “내가 뭘 잘하는지 알고 현실화할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 말하기는 모방과 창작이 버무려진 세계다. “자기만의 특징을 잡아내 꾸준히 밀고 가는 게 말짱이 되는 길”이라는 최씨는 “내가 자신 있는 것은 우리 사회 비주류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빨리 들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절할 때는 단호하게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로 “좋은 CEO가 되기 위한 자질”을 물었더니 1위로 꼽힌 게 ‘인간관계 능력’이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깔고 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이 ‘포천 500대 기업’ CEO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1위는 총체적인 인간됨이었고, 2위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었다.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면접에서 떨어진 취업 희망자들의 30%가량은 ‘화술 미숙’을 이유로 꼽았다. 면접 장소에서 회사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고 자신이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당당하게 밝힌 이들이라도 “면접 뒤 오늘 남은 시간에 뭐할 계획인가?” “출근하면 어떤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낼 것인가?” 등 ‘예상 밖’의 질문에는 횡설수설하기도 한다. 달달 외운 설명은 하지만 편안한 대화에는 익숙지 않은 탓이다. 직장생활뿐 아니라 남녀관계에서도 ‘말 잘하기’는 ‘으뜸 조건’으로 꼽힌다. 미혼 남녀의 40%가량은 ‘유머 있게 말하기’를 “사회생활의 윤활유로 2세가 꼭 보유하기를 바라는 재능”으로 꼽기도 했다(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 그러나 자신의 말솜씨에 만족한다는 사람은 20%도 채 되지 않았다.
말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성우 출신 연기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해고자 4천 명을 조사해보니, 10%만 직무능력이 떨어지는 게 이유였고, 절대 다수인 90%는 대인관계 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장소는 직장이다.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상사나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직장인 콤플렉스’에 시달리는데, 대부분의 이유는 똑 부러지게 거절하는 법을 몰라서다. “그건 힘든데요…”가 아니라 “그건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왜 어려울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거절하면 나도 언젠가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심리 때문이다. 유독 거절 못하는 이들을 ‘남을 기쁘게 해주려는 병’에 걸린 사람들로 일컫기도 한다. “내가 거절하지 않았으니 나를 사랑해주겠지, 인정해주겠지, 비판하지 않겠지, 친절하게 대해주겠지, 상처를 주지 않겠지, 포기하거나 떠나지도 않겠지, 절대 화를 내지 않겠지” 하는 식의 7가지 ‘기대심리’를 갖게 된다(미국의 심리상담가 해리엇 브레이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성공하기 어렵다. 공문선 커뮤니케이션 클리닉 원장은 “거절할 때는 단호하게,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어렵다면 시간을 벌 수 있는 말을 하면서 할 것”을 강조했다.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적·문화적 특성상 어릴 때부터 침묵하고 과묵한 걸 선호해왔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수업 시간에 질문 많이 하는 아이는 ‘진도 방해하는 아이’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논리적으로 가리거나 합리적으로 대안을 내는 사람보다는 목소리 큰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현실이 됐다.
배려와 자신감이 가장 큰 덕목
대화전문가들은 ‘배려’와 ‘자신감’이 말 잘하기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입을 모은다. 꼭 매끄러운 말발을 가질 필요도 없다. 자기 특징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방송가에 혜성같이 등장한 김제동씨는 ‘허술함’이 무기다. 유명 진행자
▶ 다른 걸 틀렸다고 여기지는 않는가. 자신이 틀린 것을 알고도 자존심 때문에 온갖 핑계를 대거나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지는 않는가.
▶ 어려운 말로 목에 힘주지는 않는지. 특히 세일즈나 설득에서는 절대 피해야 할 태도다.
▶ 잘 경청하고 있다는 티를 내는가. 말 잘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은 대화 도중 콜라(그는 콜라광으로 알려졌다)를 마실 때조차 컵 바닥을 통해 상대를 응시해 여러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볼펜과 메모지를 준비해 기록하는 태도도 신뢰를 준다.
▶ 우호적인 제3자를 동원하는가. 은행 등지에서 기다리기 지쳐 막무가내로 떼쓰는 고객이 있을 때에는 그를 포함한 모든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좋다. 다른 고객이 알아서 도와주게 마련이다.
▶ 과장과 오버 액션을 남발하는 건 아닌지. 텔레마케터의 한 옥타브 높은 “네네, 안녕하세요” 전화를 받으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는 시대다. 백화점 주차장에서 터무니없이 차려입은 도우미가 손을 흔들며 기계적인 동작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심을 가릴 정도의 과장은 소통의 걸림돌이다.
▶ 이해와 동정을 충분히 얻고 있나.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 “피곤해, 내일 말해” 하는 것만큼 상대를 ‘뚜껑’ 열리게 하는 경우는 없다. “무엇 때문에 가슴 아파 한잔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좋은 화법이다. 적절한 질문, 감사의 표현, 가르쳐달라는 요청은 대화를 매끄럽게 하는 지름길이다. 입장을 바꿔보면 안다.
▶ 상대의 눈높이에서 말하고 있는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꽥꽥대는 아이에게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하는 게 옳다고 했지?” 혼자서 우아하게 교양 있는 말을 늘어놓는 부모만큼 주변 사람을 더 짜증나게 하는 사람이 없다.
▶ 독설을 달고 살지는 않는지. 사람의 입김을 모아 냉각시킨 침전물의 색은 말할 때의 감정에 따라 다르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평소에는 무색, 사랑을 표현할 때는 핑크색, 슬픈 말을 할 때는 회색, 그리고 독설을 퍼부을 때에는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다. 1시간 동안 독설을 퍼부은 사람의 침전물을 모았더니 실험용 쥐 80여 마리를 죽일 만한 양의 독이 나왔다고 한다.
▶ 선택권을 쥐고 있는지. 어떤 결정 과정에서도 자기에게 좋은 두세 가지를 제시하면 상대는 그중 하나를 고른다. ‘노’라는 답을 피하는, 협상에서 유리한 태도다.
▶ 적절한 비난을 하는가. 비난을 받은 사람은 처음에는 변명거리를 찾아내고, 그 다음에는 자신을 합리화하며, 그것마저 통하지 않으면 비난하는 사람에게 비난거리를 찾아낸다. ‘너’ ‘자네’ ‘당신’을 주어로 표현하는 태도가 가장 위험하다. 공동 책임을 내보이는 ‘나’나 ‘우리’를 주어로 한 메시지 전달이 좋다. ‘나는 네가 늦어서 많이 걱정했다’ ‘우리가 그렇게 되면 힘들어진다’ 등.
발등에 불 떨어진 정치권
‘말하기’를 둘러싸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이다. 정치인들의 화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그러나 아무리 진정성 있는 주장도 제대로 전달 못하면 소용없다. 말을 잘했고 말하기를 즐겼던 미국의 전 대통령 레이건은 자신의 배우 능력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숙적들을 “형편없는 배우”라 부르며 분개했고, 심지어는 “배우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의아해하기도 했다.
가장 겸손하게, 발빠르게 움직이는 정당은 ‘서민 정당’ 민주노동당이다. 지난 4월24∼25일 서강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지방선거 출마자 말하기 교육도 ‘전달력’을 기르기 위한 과정이었다. 후보자들은 방송 토론 경험 유무에 따라 ‘실력’이 확연하게 갈린다고 한다. 민주노동당은 “오랫동안 대중운동을 하고 생활정치를 한 사람들이지만 ‘답답한 마음에 가르치려 드는 어법’과 ‘
당신은 어떤가.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의 말하기 습관을 물어보라. 적절한 충고와 조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막연히 인간관계나 성격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의 평소 말하기 태도부터 점검할 일이다. 때론 형식이 내용을 바꾼다.
참고한 책: <통쾌한 대화법>(공문선 지음, 흐름출판 펴냄), <남녀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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