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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韓菓가 마카롱을 넘어서는 날

흔적. 2012. 3. 25. 18:03

 

 

 

얼마 전, 오는 7월 말 열리는 런던올림픽 기간 중 한국 관광 홍보를 위한 사전 협의차 현지를 찾은 적이 있다. 영국 사교계에도 널리 알려진 한국계 로더미어 자작 부인에게 한과(韓菓)인 고시볼을 선물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런던.뉴욕.파리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세계 각국의 디저트 문화를 섭렵한 그였기에, 우리 과자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는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거라며 호기심에 차서 맛본 후, "지금까지 경험한 디저트 중 최고"라고 말했다. 기대를 넘어선 반응이었다.

며칠 전에는 세계적인 이벤트 프로듀서 데이비드 치클리티라와 저녁식사를 했다. 이탈리아에서 꽤 오래 살고 있는 미식가인 이 사람은 서울 남산 인근에 최근 생긴 한식당의 만찬에 대해, 맛은 물론 음식을 담아오는 방식까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양식(洋食)과 일식(日食)의 맛과 차리는 방식이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늘 보아온 방식에 머물러 있는 데 비해, 한식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솥뚜껑이라든지 벼루·염전을 연상시키는 접시 등 독창적인 방식으로 '멋이 있는 맛'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나는 이처럼 세계적 수준의 문화 애호가들을 시금석 삼아 한식을 맛보게 하고 반응을 살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맛을 경험해 본 사람을 대상으로 한 내 나름의 한식 실험이고 전파다. 그리고 이런 실험 횟수가 거듭될수록 한식이 이미 세계 평균 수준을 훌쩍 넘어서 선두 위치까지 엿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한식은 세계 어떤 음식과 비교해도 차별화된 맛에 창의적인 차림새까지 얹으며 진화하고 있다. 더구나 현대인의 기호에 딱 맞아떨어지는 웰빙 음식이기도 하다.

한식이 우리 문화 코드의 우수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근 독일 국제관광박람회에서 태권무(舞)와 사춤 등의 공연이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K팝은 우리와 지리적 거리 못지않게 정서적으로도 거리감이 있는 남미까지 휩쓸고 있다. 우리 문화가 이처럼 세계에서 중간은 가리라는 우리의 겸손한 기대치를 넘어서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해 본 답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한복, 한옥, 조각보에 있다. 단순함과 간결한 선(線), 개운하기까지 한 시원함,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배제하여 어찌 보면 통 큰 우리의 문화적 코드가 각 분야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꾸미려고 애를 쓰는 정교함으로 대변되던 미(美)의 표현양식을 제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함은 정교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교함을 극복한 또 다른 높은 차원임을 세계가 인정하게 된 것이다. 5000년간 품어왔던 한국의 문화적 코드는 이런 식으로 현대와 바로 맞닿은 것이다. 이러면 관광은 저절로 된다. 이탈리아를 보면 안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 모두에겐 과제가 있다. 한국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한국 문화가 세계 여러 문화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수위(首位)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 한식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상이 광범위하고 진행 속도가 빠를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나는 내 나름의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런 실험에 동참했으면 한다. 이런 노력이 모이다 보면 누가 알겠는가? 밸런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제치기 시작했다는 서양과자 마카롱을, 한과가 또다시 제치는 날이 올지를.

 

2012.03.23.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