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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살인의 해석" 제드 러밴펠드

흔적. 2017. 6. 6. 10:39



모처럼 재미있는(?) 책을 선택하다. (2006년 꼭 읽어야 할 책 선정)

젊은 때 한참 심취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과 '꿈의 해석' 그냥 호기심에서 책을 구입하여

줄을 그어가며 심취했다가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었다.

생각과 현실사이, 욕망과 억압사이, 이성과 감정사이를 넘나들면서 나에게 짧은 지식을 쌓게 해준 책.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발견한 소설. 정신분석의 원인을 파헤치며 그에 따라 벌어진 살인사건을

프로이트와 융 그리고 미국 뉴욕에서 정신분석 강의를 처음하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사실적인

재미를 한껏했다. 새삼스레 느껴지는 이유는 모든 이의 말과 행동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는...


햄릿의 'to be or not to be'의 해석, 오이디푸스의 해석은 소설책 속에서도 충분히

배움을 가져다 준다. 비록 정답이 아닐지라도, 작가의 생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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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

그렇지만 내가 완전히 프로이트에게 사로잡힌 건 '햄릿'분석을 읽었을때였다.
햄릿 분석은 프로이트의 꿈 해석에 대한 책에 수록된 부분으로, 논문의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

200단어 분량으로 가볍게 써내려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서구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수수께끼에 대한 새로운 답변이라 할 만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수천수만 번, 전 세계 어떤 언어로 씌어진 희곡보다도 더 많이 공연되었다.
성경을 빼고는. 문학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주석서와 분석 글이 씌어진 작품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극의 핵심에는 기묘한 공백, 구멍이라 할 부분이 있다.

모든 행동은 주인공이 행동할 수 없음을 기반에 두고 있었다.

이 희곡은 우울증에 빠진 햄릿이 아버지의 살인자 - 덴마크의 왕이자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 클로디어스 - 에 대한 복수를 미루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떠올린 핑계와 변명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 핑계와 변명은 고난에 찬 독백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햄릿은 독백을 통해 자신의 무력함을 비웃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사느냐(to be)로 시작하는 바로 그말이었다.

복수를 미루고 잘못된 절차를 밟은 탓에 몰락이 다가오고 나서야, 즉 오필리어가 자살하고

어머니는 클로디어스가 햄릿을 죽이려고 준비한 독주를 잘못 마신 탓에 죽고,

또 햄릿 자신은 레어터즈의 독 검에치명상을 입은 직후에야

마침내, 희곡의 마지막 장면에서 삼중으로 박탈된 삼촌의 삶을 처단할 수 있게 된다.


햄릿은 왜 행동하지 않았을까?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였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게클로디어스를 죽이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햄릿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외면했다. 무엇때문에 멈췄을까?

어째서 이 설명할 수 없는 망설임이, 겉으로 보기에 나약해 보이고 비겁에 가까운 이런 태도에

3세기동안이나 전 세계 관객들을 끌어 모을 수가 있었을까?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문학가인 쾨테와 쿨리지도 돌에 꽂힌 검을 뽑으려다 실패했고,
그들보다 못한 수백명의 문학가들은 그 돌에 박치기를 하다 머리를 깨지기도 했다.


p67

프로이트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우리는 무지한 자를 비난할 수 있었다고 박사는 말했다.
히스테리의 진실을 드러내기란 본래 어려운 일일 뿐더러, 수천 년에 걸쳐 축척된

강력한 억압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 모든 병이 다 마찬가지일세" 프로이트가 말했다.

"단지 그 원인을 이해할때만 병을 안다고 주장할 수 있고,

그때가 돼야만 병을 치료할 수 있지. 현재로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있을 수 밖에 없다네. 환자들 피를 빼면서 그걸 의학이라고 부르는 암흑시대를 견뎌야 하는 거지."


p87

프로이트가 말했다. ' 나는 종교에 대해 깊이 회의하는 무신론자일세. 모든 신경증은

그걸 앓는 사람에게는 종교와 같아. 종교 자체가 인류에게 보편적인 신경증이지.

이 정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우리가 신에게 부여한 특질은 우리가 처음 유아기와

아동기에 느끼는 공포와 소원을 반영하지.
이걸 보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 심리학의 기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네.
만약 자네가 찾는게 종교라면 나를 따르지 말게나."


p121

히스테리성 기억상실증 환자는 과거에 깊이 금지되어 있고 오랫동안 잊혀졌던 일화가

최근의 사건으로 불거지면, 오히려 의식을 억눌러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밀쳐내어

강하게 싸우게 된다. 정신 분석학은 억압의 힘에 대항해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니 당장에는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일이 잦은 편이다.


p439

있느냐 있지않을 것이나(To be or not to be)의 수수께끼를 풀었습니다.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수백년동안 사람들은 얼마나 애를 썼는데요. 허지만 아무도 풀지 못햇죠.
모든 사람들은 '있지 않을 것(not to be)'이 죽음을 뜻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음. 그런 식으로 독해하는 덴 문제가 있죠. 전체 대사는 '있지 않음(not to be)'의 행위와

동일시하고 있으니까요.

무기를 들거나 복수하는 것 따위가 있겠죠. 그래서 '있지 않음'이 죽음을 뜻한다면,

죽음은 행위라는 이름을 얻게되죠.

하지만 행위는 삶의 일부분이죠. 어떡해 행동하는 것(not being)'편에 설 수 있겠어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왜 햄릿이 '있음(to be)'을 '행동하지 않는 것(not to action)'이라는

뜻으로 썼는지를 이해하게 될 테고,
우리는 진짜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게 되겠죠? 왜 햄릿은 행동하지 않았을까요?


p441

햄릿은 연극, 곧 보이는 것의 영역에 빠져듭니다. 햄릿에게 '있을것이냐 있지 않을 것이냐

(to be or not to be)'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의미가 아니었어요.

'그대로 있을 것이냐. 아니면 그렇게 보일 것이냐(to be or to seem)'를 뜻하죠.
그게 햄릿이 해야 할 결정입니다. '보이는 것은 행동하는 것 입니다. 거짓으로 꾸미고 배역을

연기하고 이게 햄릿은 모든 문제, 모든 이의 코앞에 놓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있지 않음은 가장이 되고, 가장은 행동이 되는 거죠.

그러므로 '있음(to be)'은 '행동하지 않음(not to act)'이 됩니다.

여기서 햄릿의 마비가 옵니다. 햄릿은 겉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건 행동하지 않음을 뜻하죠. 햄릿이 그 결심을 지킨다면, 다시 말해 그냥 있기로 결심한다면 행동해선 안되죠.

하지만 그가 팔을 겉어붙이고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기로 한다면 행동해야 합니다.

그때는 실재보다 가장을 선택해야만 하죠."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죠. 모든 행위는 연기입니다(All action is acting), 모든 실행은

연극이죠. (All performance is performance). 이런 단어가 중의적인 까닭이 바로 연기에 있습니다.
'짜다'에는 계획하다는 뜻도 있지만, 내통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꾸민다'에는 모양이 나게

잘만든다는 뜻도 있지만, 거짓으로 둘러댄다는 뜻도 있죠.

예술은 기만입니다. 기교에도 교묘하다는 뜻이 들어 있죠.


- 중략.


p47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진짜지만, 그 모든 서술부의 주어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였다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콤플렉스는 더 심해진다.

딸은 곧 어머니가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젊음과 미모를 갖고 대적하게 된다.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따라잡게 되고, 아들이 커감에 따라 아버지는 자신을 밟고 지나가는

세대교체의 거센 물결를 실감하게 된다.

허지만 어느 부모가 자기자식을 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네놓고 말하겠는가?

어느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질투한다고 인정하겠는가?

그러므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들에게 투영된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바로 자신이 아들에게 은밀한 살해 욕망을

품은게 아니라, 오이디푸스가 어머니를 갈망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꾀하고 있다고 속삭인다.
이 질투가 더 강렬해질수록 부모는 아이에게 대항하여 더 파괴적이로 행동하게 되고, 결국 아이들이 자신들을 적으로 보고 달려 들게끔 만든다. 그들이 두려워 하던 상황이 이제 현실이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자체가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다. 프로이트 박사는 오이디푸스를 오독했다.
오이디푸스의 욕망은 아이의 마음속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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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6 현충일 아침. 인천 주안 방에서 읽은 책을 정리해 본다. (꼭 권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