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변하는 세상

문화에 대한 아이콘을 만든...

흔적. 2009. 6. 29. 23:58

문워크...스텝을 보고 넋을 잃은 시간이 있었다. 그 후 마이클의 팬으로서...

댄싱을 하나의 음악 장르에 포함시킨...음악에 대한 아이콘을 변경...

그 후 스티브 잡스가 또 다른 아이콘으로 만든 세대였지만...아뭏든 대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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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팝 아이콘`…문워크로 `보는 음악` 시대 열어

 

'팝 아이콘' 마이클 잭슨은 그의 노래처럼 '세계를 치유하길(Heal the World)' 바랐지만 끝내 자신의 삶도 지켜내지 못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잭슨의 죽음을 애도하며 "잭슨의 삶은 판타지와 비극으로 점철됐다"고 평가했다. 잭슨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 놓은 음반 프로듀서 퀸시 존스는 "내 동생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마이클과 함께 내 정신의 일부도 날아가 버렸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팝의 황제' 오른 최초의 흑인

마이클 잭슨은 비틀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대중 음악가였다. 1958년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여섯 살이던 1964년 다른 형제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를 결성,처음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1972
년 첫 솔로 앨범 '오프 더 월'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잭슨은 1982년에 내놓은 '스릴러'가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하면서 '팝의 황제'에 등극했다. 특히 다음 해 NBC방송에서 '빌리 진'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미끄러지듯 휘저은 '문워크' 댄스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지금까지 10개의 음반이 총 75000만장가량 판매돼 비틀스와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3'로 꼽힌다. 그래미상도 13차례나 받았다
.

마이클 잭슨이 팝 가수로서 유일하게 '황제'란 수식어를 얻은 이유는 그가 대중음악계 변화에 미친 영향력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은 작사와 작곡,노래와 안무를 모두 직접 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싱어송 라이터로 평가받는다
.

마이클 잭슨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1980년대 초반 '듣는 음악' 중심의 '라디오 스타' 대신 '보는 음악' 중심의 '비디오 스타' 시대를 열었다. 특히 뮤직비디오의 고전으로 꼽히는 '스릴러' 1982년 당시 최초로 장편영화 제작용 35㎜ 필름으로 만들어졌다. 마이클 잭슨의 독특한 안무와 무대 퍼포먼스도 공연 방식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문워크' '브레이크 댄스' '팝핀' 등 현재 댄스가수 안무의 기본이 되는 다양한 춤들을 최초로 선보였다. 흑인 팝 음악을 전 세계 대중음악의 주류로 끌어올린 것도 그의 공이다. 백인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만을 틀었던 미국 24시간 음악전문 방송 MTV가 최초로 방영했던 흑인 가수 뮤직비디오가 바로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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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09.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