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산(山)

책_ 우리 산의 인문학

흔적. 2014. 7. 27. 17:25

산. 아니 가본지 꽤 되었다.

베낭을 매지않은지...이젠 어깨가 견딜수 있을지, 1~20Kg 정도는 메고 뛰어 다닐수 있었는데.

각설하고,

 

아는만큼 보이는데 아는것이 없어 보진 못하지만 느낌은 밀려온다.

우리들의 산. 우리나라 어느 땅에서 보아도 보이는것은 산이다. 그만큼 가까이 있으며 함게 살아간다.

한발자국을 내딜때마다 숲과 나무, 그 푸르름의 옷을 입고 반겨주는 것이 산이다.

 

또한 많은 이들의 사연들을 묻고 또 묻어가며 변함없이 기다려주는 산이다.

가보지 못하는 산. 책으로나마 가까이 해야겠다.   

 

             x                         x                      x

 

최원석 지음|한길사|639쪽|2만원

 

지구 위 육지의 5분의 1이 산이다. 그 산악 지역을 인류의 10분의 1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간다. 유엔 집계에 따르면 그렇다.

산에 거주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제 발로 산에 오른다. 사서 고생인데도 아랑곳없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산행의 이유로 흔히 회자되는 것에는 이런 답이 있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

영국 산악인 조지 리 맬러리(1886~1924)가 어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에베레스트 원정을 떠나기 앞서 미국으로 강연 여행을 갔다가 내뱉은 말이었다.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어하나?” 어딜 가나 반복되는 기자의 질문이 그로서는 좀 귀찮았던 것도 같다. 짧게 맞받아 던진 답이 후대 산악인들까지 두고두고 차용할 ‘현답’이 될 줄이야.

등산은 세계 만인의 레포츠로 자리잡았지만, 한국인에게 산과 산행은 그 이상이다. 산림청 추산에 따르면, 한 달에 한번 이상 산행에 나서는 국내 인구가 1800만명을 헤아린다.

내력이 있다. 무엇보다 이 땅은 누가 뭐래도 산의 나라다. 지리적으로만 봐도 국토의 70%가 산이다. 누구나 산에 둘러싸여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산의 정기를 타고나서 산기슭에 살다가 산으로 되돌아가는 삶의 여정을 산다.” 예로부터 새 생명이 태어나면 그 태를 산에 묻었고, 생이 다한 육신 또한 산에 묻혔다.

그만큼 산은 친근했다. 외국에서는 산 하면 에베레스트나 록키, 몽블랑을 떠올리지만 우리에게는 앞산, 뒷산이 먼저다. ‘고향’ 하면 ‘산천’이 따라붙는 민족 아닌가. 저자는 “한국인은 산천이라는 큰 생명의 토양에 뿌리내린 식물성의 생활방식을 살았다”고 쓴다.

산의 이미지도 남다르다. 우리에게는 자연의 산, 생태의 산보다는 역사의 산, 문화의 산 이미지가 강하다. 여기서 저 독특한 풍수 이론이 나온다. ‘대동여지도’의 저자 김정호는 일찌감치, “산등성이는 땅의 근육이고, 흐르는 강물은 땅의 혈맥”이라고 했다. 풍수는 자연환경의 질서와 이치를 생명의 원리로 사유하고 이해하는 동아시아의 독특한 자연학이자 환경학이었다. 천여 년 동안이나 한국의 집자리와 조경, 공간배치와 구성, 건축 등에 널리 활용되었다.

한때 국내에 풍수지리 열풍을 일으켰던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 교수의 문하인 저자는 우리 선조들이 풍수의 눈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접속되어 있는 큰 생명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산을 인간화했던 흔적은 곳곳에 차고 넘친다. 산에는 유독 ‘백’자 돌림의 백산(白山) 계열 이름이 많고, 곳곳에 용산(龍山)이라 불리는 산이 자리잡고 있다. “높고 신성한 산은 천산(天山)으로 경외하고, 그 맥을 받아 마을을 둘러싸고 물을 만난 산은 용산이라 하여 그 산룡의 맥을 따라 취락을 조성했으며, 수구가 허하면 조산(造山)으로 비보(裨補·모자람을 채움)했다.”

산의 인문학은 선조들의 빛나는 전통이자 유산이기도 했다. 그들은 산에 대한 지식 정보를 체계적으로 구축했다. 산에도 족보가 있었다. 삼국사기의 ‘지리지’와 고려사의 ‘지리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지리지가 시기별로 편찬됐다. 고려와 조선 시대 지리지의 산 기록은 유산기류, 백과전서류, 지도류, 산보류 등의 산 연구 전통과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근·현대의 산지(山誌)로 계승 발전됐다. 저자는 융의 정신분석을 토대로, 한국인의 원형적인 집단 공간의식이 바로 산이라고 해석한다.

인문학 하면 머리가 무거워질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대목이 적지 않다. ‘청학동’의 기원과 확산, 한국의 태산(泰山) 문화에 관한 대목은 다른 곳에서 쉽게 보기 힘든 읽을거리다.

제목을 ‘우리 산의 인문학’으로 내걸었지만, 연구와 사색의 범위는 늠름한 산줄기가 그러하듯 비단 우리 산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논의는 더 뻗어나가 세계적 지평으로 확장되는 지점에서 끝이 난다.

639쪽 한 가득, 글과 사진, 각종 자료들로 울창한 이 책을 두고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산을 공부해온 삶의 궤적이자 분신’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장에는 ‘나의 산 공부 여정’을 덧붙여 그간의 소회를 실었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까지 산 연구는 구미의 자연과학적 산지 연구방법에 기초했기에 주로 자연생태 분야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막상 인문학적으로 정립된 산에 대한 연구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이 이 책이라는 얘기겠다.

제목의 대한 기대에 정직하게 부응하는 수작이다. 이 책 한 권이면, 주말 산행의 재미와 의미도 한 차원 높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4.07.25. 조선일보. 전병근기자